「5위에서 8위로」. 97년과 98년 국내 자동차산업(생산기준)의 세계 순위다. 이런 급락은 전에 없던 일이다.「2위에서 정상으로」. 국내 반도체 업계가 지난해 D램부문(매출액)에서 일본을 앞지르면서 거둔 성적이다. 우리나라에서 반도체 산업이 시작된지 15년만에 처음있는 일이라고 한다. 「3.6%대 40.9%」. 자동차와 반도체의 세계시장(98년) 점유율이다.
우리나라 산업을 대표할 만한 자동차와 반도체의 이같은 성적표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수치」 그대로 읽는다. 「첨단산업인 반도체의 고도성장, 이와 대조를 이루는 자동차의 추락」으로. 또 일부에서는 『자동차의 추락을 반도체가 받쳐준다면 국가경제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말한다. 틀리지 않다. 그러나 경계해야 할 것이 있다.
한국은행의 최근 보고서에 잘 담겨있다. 『국내산업에서 반도체의 비중이 점차 커지고 있어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각종 경제지표가 과대 포장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한은은 제조업 생산(생산지수 기준)에서 반도체 비중이 90년대 초반 5%선에서 97년 13.6%, 98년 21.0%로 뛰어올랐다고 밝혔다.
눈여겨 봐야 할 대목은 반도체의 생산유발 효과다. 1.30으로 자동차(2.24)에 크게 못미치며 제조업 평균지수(1.95)보다도 낮다.
이를 빌리지 않더라도 우리경제에서 자동차산업이 갖고 있는 「비중」은 여전히 크다. 자동차는 여전히 「국가대표」산업이다. 하지만 최근 벌어지는 상황을 보면 국가대표에 대한 대우와 대표 스스로의 자존심이 너무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자동차 업계에서는 전문인력과 기술, 노하우의 가치를 스스로 평가절하 하는 일이 너무 잦다. 수십년간 자동차에서 일해온 고급인력이 인력감축, 경영권 변동 등에 따라 자동차를 떠나고 있다. 이런 현상이 어느 산업보다 심하다.
자동차는 단순한 제조업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10여개 국가만이 자기차를 생산하는 특권을 누리고 있다.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빅딜을 통한 경쟁력 강화와 경영권 확립의 미명 아래 스스로의 가치를 떨어뜨리고 뿌리를 흔드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 한다.
자동차 산업에 대한 인식부족도 되살려야 할 일이다. 자동차는 부품에서 완성차 생산까지 전 과정에서 창출되는 부가가치 및 고용효과를 봐야 한다.
수출이나 판매실적 등 결과만 보고 그 가치를 판단하고 이것을 정책 결정의 잣대로 삼아서는 안된다. 반도체보다 중요도가 덜하다거나, 미국의 스필버그 사단이 쥬라기공원이란 영화를 통해 얻은 이익이 우리나라 자동차 100만대를 수출한 것과 같다는 엉뚱한 비교를 더이상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서는 안된다. 자동차는 부가가치·고용 등 여러면에서 여전히 국가대표 산업이다.
「국가대표」는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스스로 「국가대표」에 대한 자긍심을 가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