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가 끝나기가 무섭게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29일까지 결산심사 소위원회를 열어 2009년도 결산심사를 속성으로 처리하고 있다.
결산심사 법정기일(8월 31일)을 넘긴 건 이제 흉도 아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나서 "예결산 심사를 제때 처리해 달라"고 부탁해봤자 의원들로부터 돌아온 대답은 "당신 일이나 잘 하라"는 지청구였다. 국회에 아쉬운 소리를 할 수밖에 없는 행정부로서는 꿀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더 우스꽝스러운 현실은 28일 국무회의에서 내년도 예산안이 의결된다는 점이다. 행정부에서는 2011년도 예산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정작 국회는 2009년도 결산심사조차 마치지 못하고 있다. 매 연말마다 반복돼 온 '예산안 지각처리'의 전주곡을 보는 것 같아 국민들의 마음은 편하지 않다.
올해는 예년보다 사정이 조금 낫다고 하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다. 무엇보다 걱정되는 것은 친서민 기조에 따른 포퓰리즘 복지예산 경쟁이다. 정부가 이미 내년 예산을 서민희망 예산으로 강조한 마당에 여당이 이에 동조하고 야당은 정부가 내놓은 규모로는 턱없이 부족하다며 관련예산 증액을 적극 주장하고 나섰다. 복지 선명성 경쟁에 정작 필요한 복지는 허투루 넘어갈 것이라는 우려가 벌써부터 제기되고 있다.
헌법 제54조는 회계연도 30일 전인 오는 12월 2일까지 예산안을 의결하도록 정해놓고 있다. 그러나 예산안이 제때 처리된 경우는 손에 꼽을 정도다. 매년 연말이면 '사상 초유의 준예산 편성'을 들먹이며 정부예산 집행이 마비될까봐 정부와 국민이 국회 눈치를 보며 전전긍긍대고 있다. 특히 그 어느 때보다 복지 분야가 강조되는 내년에는 예산집행 차질은 곧 서민 생활과 직결될 수밖에 없다.
올해는 이명박 정부의 남은 임기 중 특별한 정치적 이슈도 선거 이벤트도 없는 유일한 해이다. 국회는 이런 '정치적 대목'을 놓치지 말고 국민들에게 예산안 심사 법정기일 준수라는 모범 선례를 남겨야 한다. 법정 예산심사일 60일은 정부의 잘못된 예산안을 바로잡기에도, 의원들이 원하는 예산을 넣기에도 결코 모자름이 없는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