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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바둑 영웅전] 덤을 낼 수가 없다

덤을 낼 수가 없다



무식하게 죽죽 밀어붙인다는 것. 프로기사들이 자주 봉착하는 과제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것이다. 하수들도 머릿속에 떠올릴 수 있는 이 단순하고 투명한 길. 프로들은 생리적으로 이 길에 거부반응을 나타낸다. 바둑이라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방식으로 이기게 되어 있는 종목이 아니라고 그들은 생각한다. 초정밀의 섬세하고 기술적인 방법에 의해서라야 프로는 승리를 일구어낼 수 있는 것이라고 그들은 믿고 있다. 그래서 그들은 말한다. 무식하게 죽죽 밀어붙이는 것은 속수라고. 프로는 속수를 두지 말아야 한다고. 그러나…. 만약에 이세돌이 앞의 수순에서 좌변을 선선히 내주고 죽죽 좍좍 밀어붙여서 상변을 송두리째 집어삼켰더라면 확실한 흑승이었다. 그 찬스를 놓쳐서 바둑이 어렵게 되었다. 백86, 88이 놓이자 좌변은 모두가 백의 확정지가 된 느낌이다. 과연 흑이 중원에서 그 보상을 받아낼 수 있을지 의문이다. 흑89를 두기에 앞서 이세돌은 8분을 숙고했다. 그 사이에 박정상은 두 개의 가상도를 만들어 타이젬에 올렸다. 그 첫째는 참고도1의 흑1로 잇는 것. 그것이면 백은 2에서 6까지로 둔다. 좌변은 좌변대로 지키고 중원도 공유지로 만들게 되니 이 코스는 백이 나쁘지 않다. 그 둘째는 참고도2의 흑1로 잇는 것. 백이 2, 4로 따내면 흑은 5에서 19까지 좌변을 관통하고 살아서 흑이 도리어 조금이라도 편한 바둑으로 보인다는 것이 박정상의 해설이었다. 그러나 저우쥔쉰은 박정상보다 한 수를 더 보고 있었다. 백90으로 들여다본 수가 멋지다. 손을 돌려 백92로 간 것도 현명했다. 백96, 98을 선수로 두고 백100으로 밀자 이게 어찌 된 노릇인가. 흑이 덤을 낼 수가 없는 바둑이다. /노승일ㆍ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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