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 노피곰 도다샤/ 어긔야 머리곰 비취오시라/ 어귀야 어강됴리/ 아흐 다롱디리…’(후략). 학창시절 국어선생님의 선창에 맞춰 익살스러운 콧소리를 섞어 ‘아흐 다롱디리~’하며 낭송했던 백제가요 ‘정읍사(井邑詞)’의 한 대목이다. 멀리 행상 나간 남편이 무사히 귀가하길 바라는 아내의 간절한 마음을 노래한 작품으로 소리 내어 읽으면 읽을수록 지아비를 향한 애틋한 사랑을 느끼게 한다. 남편을 기다리는 마음이 오죽했으면 ‘달아 높이 높이 돋으시어 멀리 멀리 비춰 주소서’라고 달님에게 기도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애타게 부르는 순박하고 지순한 이름 모를 여인의 탄식이 듣는 이를 안타깝게 한다. ‘왕의 남자’ 이준익 감독의 신작영화 ‘님은 먼 곳에(24일 개봉. 15세관람)’를 보고 ‘정읍사’의 한 대목이 불현듯 떠오른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듯 싶다. 요즘이야 여자들도 연인에게 ‘사랑한다’고 대놓고 말하는 시절이지만 우리 어머니 세대 만해도 정읍사의 아낙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영화 속 주인공 순이(수애)도 바로 그런 캐릭터다. 똑바로 쳐다보지 못하고 살갑게 말 한마디 붙이지 못하지만 군대간 남편 상길(엄태웅)이 무사하기를 그 누구보다 간절히 기원하고 있는 것. 영화의 줄거리는 단순하지만 강렬하다. 어머니의 강압에 억지로 결혼한 상길은 순이에게 ‘니는 사랑이 뭔지 아냐’는 질문을 던진 채 말 한마디 없이 베트남 전쟁터로 떠난다. 순이는 남편을 만나기 위해 온갖 고생을 겪어가며 위문 공연단 가수 ‘써니’로 전쟁터를 헤맨다. 그리고 죽을 고비를 넘긴 끝에 결국 상길을 만난다. 감독은 70년대 베트남 전쟁을 배경으로 한 전쟁 멜로 드라마를 연출해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관객에게 되묻는다.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 가사에 감독이 하고 싶은 말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 님이 아니면 못산다 할 것을… 망설이다가 가버린 사람. 마음주고 눈물 주고 꿈도 주고 멀어져 갔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