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은행 '파생상품 트레이딩 룸'을 가다

"1초에 수백만弗 왔다 갔다" 초긴장<br>외환시장 작은 움직임 포착해 흐름 읽어내<br>"0.01%P 수익과 승부" 순간 실수 용서 안돼<br>수출대금 환위험 지켜주는 '기업의 파수꾼'

산업은행 파생상품 딜러들이 서울 여의도 본점 3층 트레이딩센터에서 파생상품을 거래하고 있다. /이호재기자


지난 5일 오전9시,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3층 트레이딩룸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32명의 파생상품 트레이더들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트레이딩 모니터에 눈을 고정시켰다. 새벽녘에 북한이 미사일을 6발이나 쏴 외환시장은 물론 해외채권시장이 급격히 요동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글로벌 투자가들이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실패에 초점을 두었는지 환율과 채권시장은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트레이더들은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날은 미국 독립기념일이어서 뉴욕 금융시장이 쉬었기에 시장이 안정됐던 것이다. 다음날인 6일 뉴욕 금융시장이 크게 동요하면서 그 여파가 쓰나미처럼 산은 트레이딩룸에도 밀려들어왔다. 트레이더들은 외환시장 움직임의 폭이 커지자 잠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1bp(0.01%포인트)와 싸우는 사람들. 은행 트레이딩룸에 근무하는 트레이더들을 표현한 말이다. 국제금융시장의 작은 움직임을 포착해 큰 물결의 파동을 읽는다는 의미다. 그들은 환율이나 채권 수익률의 움직임에 따라 트레이딩할 범위나 포지션을 달리 한다. 1초에 수백만달러가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초긴장 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이익을 내면 다행이지만 아차 하는 순간 실수라도 하면 고객에게 큰 손실을 안긴다. 국제적으로, 또는 국내에서 정치ㆍ외교적으로 큰 사건이 터진 날, 한국은 물론 선진국 중앙은행에 회의가 있는 날, 그들은 숨을 죽이며 모니터와 싸운다. 올 상반기 내내 외환시장이 급격하게 변동하자 은행 트레이딩룸에는 수출업체들의 문의전화가 쏟아졌다. 달러로 대금을 결제하는 수출업체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환차손으로 발을 동동 굴렀다. 몇 달 동안 고생해 받게 된 수출대금의 상당액이 날아갈 위기에 처한 것이다. A조선사의 경우 2억달러 규모의 선박 수출대금에 대해 환헤지의 기회를 놓쳤다. 1달러당 1,000원대를 유지해야 원가를 맞추는데 환율이 920원까지 떨어져버린 상황에서 역마진이 나게 생겼다. 하지만 이 업체는 다행히 산업은행의 권유로 옵션을 이용한 파생상품에 가입했다. 파생상품은 금리나 환율ㆍ주가 등의 변동에 따른 위험을 회피하거나 줄이도록 설계된 금융상품을 말한다. A조선으로부터 전화를 받은 윤재근(41) 산업은행 금융파생팀장은 920원까지 밀렸던 환율이 다시 반등할 조짐을 보이자 통화옵션 거래를 준비했다. 그는 A조선에 맞춤식으로 제조된 파생상품을 통해 사전에 목표로 한 시장 환율에 근접하게 수출대금을 헤지할 수 있었다. 자칫하면 수백만달러의 손실을 볼 상황이었지만 파생상품 덕에 A조선은 거의 손실을 보지 않고 수출대금을 받게 된 것이다. 이처럼 파생상품 딜러들은 기업의 수요에 맞는 파생상품을 만들어 급변하는 시장변동의 위험으로부터 기업을 지키는 파수꾼 역할을 한다. 윤 팀장은 “환율이 급락할 때 환 위험관리 파생상품에 가입하지 않은 기업은 속이 시커멓게 탈 것”이라며 “이런 업체는 선물환 옵션 파생상품을 통해 환 위험을 대비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 팀장은 국내 파생상품시장의 1세대 딜러로 입사 이듬해부터 15년 동안 파생상품업무만 담당해온 베테랑이다. 그가 입사할 당시만 해도 국내에는 파생상품이라는 개념이 거의 없다시피했다. 외국계 은행 국내지점을 통한 장외 금융선물 거래가 있기는 했지만 이용자의 인식부족, 투기거래에 따른 손실경험 등으로 거래실적은 미미했다. 하지만 15년이 지난 지금 국내 파생상품시장은 성장에 성장을 거듭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내 장외 파생상품 거래잔액은 2003년 말 991조원, 2004년 말 1,264조원을 기록한 데 이어 지난해 말에는 1,678조원으로 급성장하고 있다. 장내 파생상품 거래도 꾸준한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파생상품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최근에는 통계 및 수학 등을 활용한 첨단기법을 접목한 상품들이 쏟아지고 있다. 옵션과 옵션, 옵션과 스와프 등 파생상품의 조합을 통한 복합파생상품, 기업 및 국가 신용도를 대상으로 하는 신용파생상품, 날씨와 CO2 배출권을 대상으로 하는 파생상품 등으로 취급대상이 확대되고 있다. 이상욱 우리은행 파생금융팀 과장은 “홍콩에서 유행하는 파생상품이 국내에 거의 시차 없이 들어오는데 이 상품을 분석, 다시 새로운 파생상품을 만들기에 이르기까지 국내은행의 능력이 높아졌다”고 말했다. 특히 주가지수선물옵션과 개별 주식, 채권과 이자율 스와프 등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상품들은 정밀한 기계를 설계하는 것처럼 수학이나 공학적 개념을 필요로 하므로 관련 전공자들이 우대받고 있다. 이 과장은 “예전에는 경영ㆍ경제학 전공자가 많았지만 최근에는 수학이나 공학, 그리고 한국과학기술원(KAIST)의 금융공학 전공자들이 많아지는 추세”라고 말했다. 특히 파생상품시장이 확대되고 금융기관의 영입경쟁이 벌어지면서 첨단 파생상품을 설계하는 금융분석가인 ‘퀀트(Quant)’의 몸값이 상한가를 치고 있다. 윤만호 산업은행 트레이딩센터장은 “국내 금융시장에서 파생상품시장은 발전의 여지가 크다”며 “고객의 니즈에 맞는 파생상품을 제공하고 새로운 상품을 개발, 시장을 선도하고 기업을 리스크에서 보호하는 역할을 해낼 것”이라고 말했다. "커지는 파생상품시장 잡자" 은행 '트레이딩 룸' 대형화
국내 파생상품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은행 트레이딩룸과 전담인원이 대형화하는 추세다. 국민은행 파생상품사업단에는 트레이더(11명), 상품개발(8명), 마케팅(12명) 등 총 30명이 파생상품을 전담하고 있다. 트레이딩 인원 78명 중 절반이 파생상품을 전담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지난 5월 금융공학실과 자금거래실을 트레이딩센터로 통합했다. 이 센터에는 전체 직원 76명 중 32명이 파생상품을 전담하고 있다. 신한은행 딜링룸에는 전체 66명의 인원 중 FX옵션(4명), 금리파생(4명), 주식파생(3명), 스트럭쳐링(7명), 선물환(2명) 등 16명의 파생상품 전문인력이 활동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파생상품 트레이더(11명), 상품개발(5명)을 포함해 국내 최대인 34명의 파생상품 전문인력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12명의 파생상품 딜러들이 활동하고 있으며 하나은행은 상품개발 전담인력 없이 파생상품딜러(6명), 외화채권투자(2명) 등 총 14명의 파생상품 전문인력이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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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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