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택계열의 좌절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젊고 역동적인 기업의 좌절을 의미합니다. 나아가 창업을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의 꿈과 희망을 앗아갈 수도 있습니다.” 박병엽(사진) 팬택계열 부회장은 11일 채권단에 워크아웃을 공식 요청한 후 임직원에게 보내는 편지를 통해 다시 재기해야 할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사실 팬택이 벤처기업의 살아 있는 전설이고 박 부회장 자신도 샐러리맨의 신화로 평가되는 탓에 이대로 주저앉기에는 억울한 심정이 너무 클 것 같다. 박 부회장은 호서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지난 87년 무선호출기 생산업체인 맥슨전자에 입사했다. 기업을 상대로 한 무선호출기 판매영업에서 박 부회장은 남다른 역량을 과시했다. 3,000명의 직원 가운데 회장 다음으로 접대비를 많이 쓸 정도로 능력을 인정받으며 스카우트 제의가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박 회장은 91년 창업을 결심했다. 전세금을 빼 자본금 4,000만원, 직원 6명으로 무선호출기 생산업체인 팬택을 설립한 것. 박 회장은 남들이 모두 불가능하다고 고개를 젓는 사업마다 1%의 가능성만 있으면 공격경영을 표방하며 돌진했다. 그 결과 팬택계열은 80년대 이후 창업한 제조업체 가운데 유일하게 조(兆) 단위 매출을 기록한 업체로 떠올랐다. 또한 창업 15년 만에 팬택계열을 매출 3조원, 세계 7위의 휴대폰 생산업체로 키워냈다. 팬택의 이 같은 초고속 성장에는 박 부회장 특유의 친화력, 동물적인 판단력, 불도저 같은 추진력이 숨어 있다. 그는 돈도 없고 학벌도 없었지만 만나는 사람이면 누구나 ‘형’이나 ‘동생’으로 만들어버렸다. 특히 무선호출기 시장이 오래가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에 따라 97년 휴대폰 제조업체로 탈바꿈, 5년 만에 매출 1조원을 올리는 기업을 키워낸 것은 그의 동물적인 사업감각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 부회장의 성공 신화는 지난해 5월 ‘스카이’ 휴대폰으로 널리 알려진 SK텔레텍을 전격 인수하면서 정점에 달했다. 이 같은 빅딜에 힘입어 팬택은 국내시장에서 LG전자를 제치고 휴대폰 2위 업체로 올라서기도 했다. 하지만 박 부회장의 순항은 더 이상 계속되지 못했다. 해외 시장에서 자가 브랜드로 사업하기 위해 2,000억원 이상의 비용을 투입하고 미국ㆍ일본시장 공략에도 나섰지만 세계시장이 노키아 등 대기업 중심으로 재편된 상황이라 자체 브랜드 전략은 쉽사리 성과를 내지 못했다. 지금 박 부회장은 기로에 서 있다. 하지만 박 부회장 특유의 친화력과 사업감각, 그리고 추진력을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은 그의 재기에 무게를 싣고 있다. 특히 박 부회장은 협상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어 워크아웃 위기를 극복하고 재기의 신호탄을 쏘아올릴 것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