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5개월만에 막 내리는 '브로커 윤' 수사

범죄혐의 39건 포착…`배후'는 끝내 못 밝혀

지난해 11월 20일 김포공항 귀빈 주차장에서 검거된 뒤 정치권과 법조계, 재계를 떠들썩하게 했던 `윤상림씨 사건'이 5개월만에 사실상 끝났다. 윤씨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는 20일부터 대검 차장을 지낸 김학재 변호사와 최광식 전 경찰청 차장 등 윤씨와 돈을 주고 받았던 전직 검ㆍ경 고위 간부의 처벌 여부를 차례로 결론 짓고 수사팀을 해산할 방침이다. 검찰은 브로커 윤씨 1명을 조사하기 위해 무려 검사 5명을 투입하고 몇 달에 걸쳐 1천여개의 실명ㆍ차명 계좌를 이 잡듯 뒤지며 연인원 수백명의 참고인을 조사한보기 드문 수사였다. 그러나 윤씨의 로비 대상이 됐던 `배후세력'은 결국 실체가 드러나지 않아 `희대의 브로커'라는 세간의 평이 무색하게 됐다. 그동안 윤씨와 관련된 39건의 범죄 혐의를 포착해 6차례에 걸쳐 기소했으나 세간의 의혹을 받았던 `몸통'의 실체는 끝내 드러나지 않아 이번 수사는 태산명동서일필( 太山鳴動鼠一匹)의 모양새가 된 것이다. ◇ 전직 검ㆍ경 고위 간부ㆍ재벌 총수 미제 = 검찰은 윤씨 사건과 관련, 김학재변호사와 최광식 전 경찰청 차장,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 경기도 하남시 풍산지구 분양 관련 의혹 처리만 남겨놓았다. 김 변호사는 윤씨 소개로 여러 사건을 수임한 의혹과 관련, 사건을 맡기는 커녕선임계를 낸 적조차 없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계좌추적 과정에서 윤씨에게 1억원을제공한 사실이 드러나는 등 여러 차례 돈 거래를 한 정황이 포착됐다. 검찰은 최근 서울중앙지검 3차장과 특수2부장 등 부장검사 6명이 공소심의위원회를 열어 김 변호사 기소 여부를 논의했다. 이 자리에서는 윤씨에게 건넨 돈을 사건 수임 대가로 볼 수 있다는 의견과 수임과 돈을 건넨 시점이 떨어져 있어 대가성이 명확하지 않다는 의견이 엇갈린 것으로알려졌다. 검찰은 김 변호사 외에 윤씨와 돈거래를 했던 변호사 10여명 중 절반은 윤씨에게 돈을 뜯긴 피해자인 것으로 잠정 결론내렸고, 검사장 출신 K변호사 등 나머지 3~4명의 변호사는 김 변호사와 함께 사법처리 여부를 일괄 결정할 방침이다. 검찰은 최광식 전 차장을 비롯해 인사 청탁 대가로 금품을 받은 총경ㆍ경정급전ㆍ현직 경찰 간부 3~4명을 17일께 불구속 기소할 방침이었지만, 최근 새로운 혐의사실이 추가로 드러나자 결론을 유보했다. 윤씨 계좌에서 나온 1억원짜리 수표 한장 때문에 진승현씨에게 15억원을 준 사실이 드러난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은 이달 중 사법처리 여부가 결정될 전망이다. 횡령ㆍ조세포탈액이 50억 미만이면 정 회장의 공소 시효는 이달로 끝나기 때문이다. 정 회장은 수차례 검찰에 소환되면서 1999년 4월 고려산업개발 신주인수권 매매로 생긴 차익 56억원 횡령 혐의는 일부 시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은 정 회장이 `먹튀' 주장을 하고 있는 전 현대산업개발 재무팀장 서모씨(미국 체류)가 없더라도 정 회장 혐의를 입증하는데 지장이 없다며 기소 방침임을 여러 차례 밝혔다. 브로커 윤씨가 비공식 회장을 맡았던 하남의 W종건 관련 수사는 수사팀 해체 이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풍산지구 시행사 선정 과정에서 윤씨가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과 관련해2월 초 한국토지공사에서 입찰 관련 전자추첨 프로그램 소스를 넘겨받아 분석했지만특별한 혐의는 찾아내지 못했다. 검찰은 윤씨가 W종건을 재기의 발판으로 삼으려 했던 점을 감안해 회사측의 비자금도 집중적으로 추적 중이다. ◇ 브로커 판치는 사회상 그대로 드러내 = 검찰은 2004년 1월 6일 대검으로부터윤씨 관련 첩보를 넘겨받고 특수3부에 수사하도록 했지만 내사는 답보 상태에 빠져있다가 8월에 특수2부로 넘어갔다. 한달 뒤 이번에는 특수1부가 수자원공사 사장 고석구씨에게 H건설 등이 금품을건넨 비리 사건을 수사하게 되면서 특수2부로부터 윤씨 사건을 다시 넘겨받았지만윤씨 관련 단서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수사는 지난해 9월 대전지검에서 윤씨가 연루된 전북지방경찰청 `청탁수사' 첩보가 이송된 뒤 활기를 띠었다. 주임검사인 문종렬 검사는 윤씨가 강원랜드에 자주 출입했다는 첩보를 듣고 10월께 강원랜드를 압수수색해 윤씨가 사용한 1천만원 이상 고액수표 830여장을 확보했다. 이 때부터 윤씨의 돈줄을 따라가는 수사가 시작됐다. 검찰은 이어 H건설이 윤씨에게 9억원을 제공키로 하고 작성했다는 `합의서'까지찾아내는 등 윤씨 비리와 관련한 증거와 진술 등을 차례로 확보해 제주도에서 부장판사와 골프를 치고 돌아오는 윤씨를 체포했다. 지금까지 드러난 혐의만 보면 윤씨는 거물 브로커라기보다 사기꾼에 가깝다. 혐의 사실도 대부분 사기가 적용됐다. 재벌 제약사 부사장부터 지방 중견 건설업체 사장, 부동산개발업자 등 윤씨에게돈을 준 다양한 직군의 사람 중 일부는 피해자인 셈이다. 하지만 이들 중 상당수는 떳떳하게 피해를 봤다고 주장하지 못하고 빌려 준 돈이라고 하는 등 수사가 진행되면서 윤씨와 입을 맞췄다. 자신들이 건넨 돈이 `급행료'였기 때문에 수사선상에 오를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결국 피해자와 범죄자가 암묵적으로 합의할 수 있게 만든 사회 구조가 문제였던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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