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 거래 부활하나
국공채금리 떨어지자 수요 기지개
'회사채 시장 부활의 전주곡인가?'최근 일부 금융기관에서 투자적격등급인 BBB등급 회사채 거래가 재개되면서 꽉 막혔던 기업들의 자금 조달 시장이 숨통을 트지 않을까라는 조심스러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움직임이 회사채 시장 전체의 본격적인 부활을 예고하는 것은 아니지만 국고채 금리(3년만기)가 5%대에 접근함에 따라 투자가들의 기대수익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도 회사채 시장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지적한다.
◇회사채 거래 재개 조짐 보인다
은행, 투자신탁운용회사, 연기금 등 채권시장의 '큰손'들이 회사채 편입비율확대 시기를 본격적으로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말까지 '안전성'만을 강조한 채 위험부담이 없는 '국공채 편식' 모습과는 대조적인 상황이 나타나고 있다는 징후가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특히 명동 같은 사채시장에서는 큰 손들이 BBB급 회사채를 사들이고 있다는 이야기가 조금씩 퍼지고 있다.
H투신운용사 채권매니저는 "지난달말부터 보험권, 마을금고 등에서 신용등급 상승이 예상되는 BBB등급 회사채를 찾는 전화문의가 이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대상은 아시아시멘트, 한일건설이 대표적이다.
또 다른 H투신사 관계자 역시 "정보에 빠른 투자자문사나 부티크에서 서울신용보증이 보증하는 물량을 살 수 있느냐고 물어온다"면서 "하지만 이들 기업들의 회사채는 유통물량이 적어 구하기가 어려워 실제 거래는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밝혔다.
S증권사 채권브로커는 "우량 BBB급 회사채는 거래되는 수익률의 경우 파는 쪽에서는 당일 회사채 수익률을 제시하는 반면 사는 쪽에서는 -15bp에서 20bp사이에서 거래를 원하고 있어 상당 부분 괴리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며 "하지만 최근 수익률이 지난해 9.05%대에서 8.96%대로 내려가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동원경제연구소 채권분석가인 류승화 연구원도 "투자적격등급인 BBB등급 기업 중 재무구조가 건실한 기업을 추천해달라는 기관투자가들의 문의가 요즘 부쩍 늘었다"고 말했다.
이와함께 BBB급 회사채 발행 물량도 늘고 있는 추세다. 증권업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BBB등급 회사채 발행규모는 7,270억원으로 11월보다 7배 가량 증가했다.
물론 차환발행의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일부 중견 기업들은 신규 발행에 성공, 자금조달에 상당부분 숨통이 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일진다이아몬드의 경우 무보증으로 200억원을 신규 발행했고, SKC와 대한제당도 각각 100억원, 80억원을 성공리에 발행했다.
◇왜 회사채에 눈돌리나
우선 전 금융기관이 '수익성' 대신 '안전성'을 표방하면서 국공채수요가 폭증, 국공채 금리가 시상 최저치(99년 5월 6일, 5.91%) 기록경신을 앞둘 정도로 기형적인 채권시장이 형성돼 있다는 데서 운용전문가들은 새로운 돌파구를 찾고 있다.
국고채 3년물의 경우 지난 2일 6.67%로 첫장을 연 이후 단 6일만에 6.10%(8일)로 하락, 5%대 진입 을 눈앞에 두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자금이 몰려있는 국공채 금리가 하락하면서 채권투자수익률이 급락, 기관투자가들의 새로운 돌파구 찾기로서 회사채 시장이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다. "조달(수신)금리 이상의 수익률 확보가 최대현안으로 부상하고 있다"(농협 자금부 구덕현 과장).
예컨대 은행이 고객으로부터 자금을 유치하고 내주는 수신금리는 6.8%~7%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6.10% 금리를 형성하고 있는 채권에 계속 투자할 경우 역마진 현상이 심화될 수 밖에 없는 상황도 이 같은 움직임의 원인으로 거론된다.
권경업 대한투자신탁운용 채권운용본부장은 "국고채 금리하락으로 수익률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회사채, 특히 리스크가 적은 투자적격 등급인 BBB급 회사채 쪽으로 기관투자가들이 관심을 갖고 투자대상 물색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전했다.
◇기업 자금난 숨통 터줄까
하지만 이같은 상황반전에도 기업들의 자금난을 덜어주기에는 아직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대세를 이룬다. 기관투자가들의 회사채 투자 대상과 규모를 워낙 보수적으로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중견 기업들은 자금 사정이 나아지겠지만 아직도 회사채 거래는 초기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채권업무를 취급하고 있는 하나은행 은행자금팀 성기창 과장은 "역마진 상황을 우려하면서도 아직 본격적인 회사채 매입에는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중견기업이 신규발행하는 회사채는 품귀현상까지 빚고 있다. 이는 시장이 살아날 것이라는 기대와 사려고 해도 살만한 채권이 많지 않다는 신용경색 현상이 아직 여전하다는 현실을 동시에 반영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농협 구과장은 "회사채 매입물량은 늘리되 당분간 제한적 운용할 것"이라는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동원경제연구소 류연구원은 "회사채 거래가 아직은 우량채 중심의 한계성을 계속 견지하고 있어 기업 자금시장 파장여부는 아직 미지수"라는 견해를 밝혔다.
권경업 본부장은 "산업은행의 만기회사채 차환발행(만기연장) 발표가 실제 시장에서 가시화되고 정부의 구조조정 정책의 일관성과 성과 여부가 재개된 기관투자가들의 회사채 관심을 지속시키는 핵심 요소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정승량 기자
홍준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