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부-재계] 지배구조개선 힘겨루기

재벌의 소유구조 개선문제가 수면위로 급부상하고 있다.재계의 싱크탱크인 전경련산하 한국경제연구원에서 「실패 경영인 퇴진론」이 불거져 나오면서 시작된 소유·지배구조 개혁논의는 이제 「실패한 경영인이 물러날 수 밖에 없는 환경을 만들겠다」는 정부의 단호한 의지와 맞물려 갈수록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이와 관련, 이기호(李起浩)청와대 경제수석이 15일로 예정됐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과의 간담회를 돌연 취소, 재계와 정부의 불편한 관계가 표면화되고 있다. 당초 15일 회동을 먼저 제안했던 李수석은 청와대 일정상 간담회를 취소할 수 밖에 없었다고 밝히고 있지만 최근 정부가 삼성자동차 처리과정 등에서 재벌의 소유구조 문제를 거론하기 시작한 마당에 전경련 회장단과 회동하는게 부담스러웠기 때문일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재계 관계자는 14일 『경제수석과 전경련 회장단의 간담회를 비롯한 재계의 주요 행사가 불과 하루이틀을 앞두고 모두 연기되거나 취소됐다』며 『최근 지배구조 개선논의가 본격화하면서 재계가 갈피를 못잡고 있다』고 밝혔다. 이날 재정경제부는 앞으로 실패 경영인의 퇴진을 직접 요구하기보다는 내부 시스템에 의해 자동적으로 퇴출되도록 견고한 장치를 만들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감사위원회 적용대상 확대, 사외이사 독립성 강화, 누적투표제 의무화 등을 통해 실패한 경영진이 책임을 회피할 수 없는 시스템을 만든다는 것이다. 정부는 또 민간인위주의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가 보다 강한 소유구조 개선방안을 만들 수 있도록 유도할 방침이다. ◇정부의 의지가 확고하다= 재경부는 지배구조 개선을 위해 대표소송의 요건을 크게 완화,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영진에 대해 즉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하고 감사위원회의 적용대상을 당초 계획인 자기자본금 1,000억원이상보다 대폭 확대할 계획이다. 또 소액주주들이 자신들을 위한 이사를 선임할 수 있는 누적투표제 도입을 의무화하고 사외이사가 재벌총수나 경영진의 입김에서 벗어나 독립적으로 선출되고 회사측에 경영정보를 당당히 요구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제도개혁과 함께 현행 세법을 엄격히 적용하는 조치로도 소유구조를 상당히 개혁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 현재 상속세의 경우 50억원 초과분에 대해 45%의 세율이 적용된다. 이런 세율구조가 제대로 작동하면 재벌이 대물림을 하는 과정에서 지분율이 급락할 수 밖에 없고 결국 무소불위의 경영권 행사가 불가능해진다는 생각이다. 정부는 또 민간경제계 중심의 기업지배구조개선위원회가 최근 정부안보다도 후퇴한 「지배구조개선 모범규준」을 만들고있다는 지적을 수용, 본래 취지를 살릴 수 있도록 적극 유도할 방침이다. ◇재계가 당혹해하고 있다= 경제수석과 전경련 회장단의 간담회외에도 14일 열릴 예정이었던 정몽구(鄭夢九) 현대회장과 전경련 출입기자들의 간담회, 한경연의 「제2금융권에 대한 대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정책」 설명회 등이 모두 전격 취소됐다. 재계는 특히 한진그룹 세무조사, 재벌계열 금융기관 검사, 현대주가조작 조사 등이 동시 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정황을 떠올리며 총수퇴진 압박이 「사회적 요구」라는 형태로 나타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재계는 최근 돌출한 일련의 상황이 모두 「경영실패 총수 퇴진」을 의미하는 재벌의 소유·지배구조 개혁과 맞닿아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한경연이 잘못 건드린 상처가 덧나 무자비한 외과수술로 번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재계는 청와대 경제수석이 갑작기 간담회를 취소한 것도 『지금 재벌총수들과 할 얘기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하고 있다. ◇재계의 대응= 전경련 손병두(孫炳斗)부회장은 14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기업개혁을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가 이미 만들어져 과거와 같은 재벌은 사실상 없어진 것이나 다름없다』며 『상호지급보증, 내부거래, 부채에 의존한 팽창주의 등은 다 없어지지 않았느냐』고 주장했다. 정부 압박에 대해 본격적으로 반발한다고 보기 어렵지만 더 이상 밀릴 수 없다는 결연한 의지는 충분히 읽을 수 있다. 전경련 관계자는 『지배구조 개선과 관련, 정부에 맞서는 모양새는 피할 계획』이라면서도 『정부의 지배구조 개혁안으로 발생할 부작용을 중심으로 반대논리를 제시, 최대한 반영되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손동영 기자 SON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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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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