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낙원(失樂園ㆍParadise Lost)'. 셰익스피어에 버금가는 시인으로 평가 받는 존 밀턴(1608~1674)의 대표작이다. 밀턴은 대서사시 '실낙원'으로 얼마를 벌었을까. 이렇게 알려져 있다. '시력을 잃고 가난에 허덕이던 밀턴이 단돈 10파운드에 저작권을 넘겼다'고. 정확하게는 10파운드가 아니라 5파운드다. 1667년 4월27일자로 작성된 계약서에는 '원고를 넘길 때 5파운드를 지급하며 초쇄(初刷)가 다 팔리면 5파운드를 추가로 내준다. 2쇄ㆍ3쇄ㆍ4쇄가 팔릴 때마다 5파운드씩 지급한다'고 명시돼 있다. 당시 기준으로는 작가에게 다소 불리할 뿐 정상적인 계약이었다고 전해진다. 빼어난 문장으로 이름 높았던 밀턴이 이런 계약을 맺은 것은 정치상황 때문. 크롬웰의 공화정에서 외국어 담당관으로 일했던 밀턴은 왕정복고 이후 출판계에서 기피인물이었다. 과도한 업무로 맹인이 된 뒤 공화정 붕괴로 재산몰수ㆍ공직추방을 겪은 밀턴은 딸들에게 구술한 '실낙원'을 1665년 초 탈고했지만 출간까지는 2년 반을 기다려야 했다. 런던 대역병(1665)과 대화재(1666)로 출판여건이 좋지 않았던데다 출판사들이 밀턴을 꺼렸기 때문이다. 가까스로 5파운드를 받고 출판계약을 한 밀턴이 추가 인세 5파운드를 받은 시기는 만 2년 뒤인 1669년 4월. '실낙원' 초쇄 1,300권이 매진된 뒤다. 적지만 밀턴은 이 돈으로 최저의 생계를 꾸리며 사망(66세) 전까지 거작 '복낙원(復樂園)'과 '투사 삼손'을 저술했다. 밀턴 사후에 유가족이 받은 '실낙원' 인세는 8파운드. 인세 총액을 합쳐야 18파운드에 불과하지만 작품 '실낙원'은 영원히 빛난다. 굳건한 신앙인이며 소신을 지킨 지식인이자 불굴의 혁명가인 밀턴의 삶과 생각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