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패주고 싶은 '미스 코리아' 박 부장 같은 직장상사

MBC 수목 드라마 '미스 코리아'

성희롱 인권 무시 일삼는 박 부장에

강력 항의도 못하는 엘리베이터걸 통해

여성들의 직장생활 애환 그려 시청자 공감

박 부장 역 완벽 소화 장원영 연기 일품

사진=방송화면

여직원들의 탈의실을 노크도 없이 들어와서는 인사 교육을 시킨답시고 엉덩이를 만지는 성희롱에 돌대가리냐 새대가리냐라는 식의 언어 폭력을 일삼는 부장. 아직도 있습니까?

적어도 지난 18일 첫 방송된 MBC 수목 드라마 ‘미스 코리아’에는 이런 부장이 있다.


주인공 오지영(이연희 분)이 엘리베이터 걸로 근무하는 드림 백화점, 그곳에서 엘리베이터 걸들을 관리하는 박 부장(장원영 분)이 바로 그런 부장이다.

“여러분은 머리가 돌대가립니까? 새대가리입니까? 왜 했던 말 또 하게 만들어. 어서 오세요. 드림백화점입니다. 엉덩이하고 허리는 90도. 언제나 여기는 이렇게 90도로 맞아 떨어져야 합니다. 요즘 여러분들 때문에 우리 백화점 매출이 뚝뚝 떨어진다는 소리가 들립니다.”

엘리베이터 걸들이 옷을 갈아입는 탈의실에 노크도 없이 들어온 박 부장의 극중 대사다. 엉덩이하고 허리는 90도를 유지하라면서 음흉한 눈빛으로는 엘리베이터 걸들의 엉덩이를 훑고 ‘나쁜 손’으로는 만지고 여직원의 인권이나 성희롱에 대해서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직장상사의 전형이다.

“우리 백화점에 너처럼 그렇게 ‘따박따박’ 말대꾸하는 마네킹 봤냐? 우리 회사에는 약 200여명의 마네킹이 있습니다. 그 마네킹이야 말로 말 없이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베스트 직원들이지. 상사에게 대들기를 하나 배고프다 밥 달라 징징대기를 하나. 언제나 날씬하지 살도 안 찌고 들어갈 데 들어가고 나올 데 나오고. 미스코리아 뺨치는 몸매에 지 분수를 알고 언제나 회사를 위해 충성을 다하는데. 너희들은 너희들은. 특히 너는 머리가 너무 나빠. 네가 살 길이 뭔지 모르지?”


이는 박 부장이 탈의실에는 노크 좀 하고 들어와줄 수 없냐는 어렵지 않은 여직원의 근무환경 요청을 묵살하며 내 뱉는 말이다. 분수를 알고 언제나 회사에 충성하며 살도 찌지 않는 미스 코리아 몸매의 직원이 베스트 직원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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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게다가 회사에 있는 직원들의 방귀도 박 부장 자신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방귀 뀌었어? 방귀 뀌었지? 엘리베이터 안에서 삐삐도 안되고 사탕 껌도 안되고 몰래 음식 먹는 것도 금지. 더군다나 방귀는 음식 먹는 거. 너는 고가에서 마이너스야. 손님들이 니 방귀 냄새 맡으려 우리 백화점에 오는 줄 알아. 어찌 이 손님들 신성한 공간에 네까짓 게 방귀를 뀌고 있어. 야 방귀 조절도 못 하냐? 참았다가 밖에 나가서 뀌고 오든가 했어야지. 방귀는 니 방에서 뿡뿡 꿔대라. 이곳에서는 너뿐 아니라 네 방귀도 내 명령에 따라야 된다는 것 몰라?”

실제로 드라마 상에서 엘리베이터 걸 오지영은 방귀를 뀐 것이 아니라 박 부장에게 찍혀 하루 종일 점심 시간도 없이 풀타임으로 엘리베이터에 탑승해 “올라갑니다” “내려갑니다”를 반복하며 일하던 중 허기가 져 계단을 몰래 먹었고 박 부장이 계란 냄새를 방귀 냄새로 오인한 것. 드라마 상황에서는 코믹하기도 했으며 계란을 까서 한입에 넣고 목이 메이자 침을 ‘모아 모아서’ 삼키는 이연희의 연기에서 시청자들은 ‘웃프다’ 즉 웃긴데 슬프다는 반응을 보이며 짠해했다.

‘미스 코리아’는 1997년 IMF 구제금융 당시 상황을 그린 드라마로 거품이 빠진 한국 경제에 몰아 닥친 현실을 직업군 중 가장 제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백화점 감정 노동자 즉 엘리베이터 걸들의 애환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박 부장은 엘리베이터 걸들에게 희망 퇴직을 이렇게 권유한다.“우리 백화점 조직슬림화의 일환으로 희망퇴직 지원을 받겠다. 처음 들어 볼 거다. 좋은 거야. 너희들이 자원해서 회사 관둬주는 거다. 대신에 퇴직금도 제대로 받고, 새 직장 구하기 전까지 6개월 치 월급도 얹어준다. 어때 회사가 참 자상하지 않냐? 잘 생각해라”

요즘은 익숙한 ‘노동의 유연화’나 ‘조직 슬림화’라는 말도 당시에는 낯선 단어였다. 노동의 유연화는 곧 비정규직 근로자의 양산을 의미하며 희망퇴직이라는 구조조정은 절망퇴직을 의미하는 것이었음을 당시에는 이해도 공감도 가지 않았을 것이다.

박 부장이 막돼먹은 직장상사로 보이는 것은 이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낸 배우 정원영의 연기 덕이다. 어디를 향하는지 알 수 없는 눈동자로 여직원들을 불안하게 하고 “방귀 뀌었어?”라는 대사를 할 때는 듣도 보도 못한 특유의 억양으로 폭소를 자아냈다. 뿐만 아니라 여직원들을 대할 때 버럭버럭 소리를 질러대는 모습에서는 어느 직장에서나 있을 법한 아니 어떤 생태계에서나 있을 법한 강자에게 강하고 약자에게 한없이 약한 생존 법칙 적응자의 모습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18일 방송이 나간 후 ‘이연희 연기 논란 끝’‘이연희 계란 먹방’이 다음날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올랐다. 이연희 연기가 발전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에서는 남자 주인공 이선균도 있었지만 막돼먹은 직장상사 역을 때려주고 싶게 소화해낸 배우 장원영도 있었다.


연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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