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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만으로는 주거복지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공공 부문 외에도 민간 부문, 특히 비영리단체와 시민사회 등이 파트너로 참여해야 비용이 절감되고 서비스가 향상될 수 있습니다."
최근 정치ㆍ사회적으로 복지가 주요 화두로 떠오르면서 주거복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정부 의존적이며 신규 건설 중심의 우리나라 주거복지정책이 민간 부문의 참여를 확대하고 보다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입주민의 주거 만족도를 높이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산하 토지주택연구원은 17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 삼성컨벤션센터에서 '주거복지와 공공정책'을 주제로 국제컨퍼런스를 개최했다. 이날 컨퍼런스에 참가한 국내외 석학은 인구 고령화 추세에 맞춰 다양한 노인층의 주거욕구를 만족시키는 한편 의료ㆍ교육ㆍ교통 등 비주거복지서비스와 통합된 주거복지정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주거복지 기여 불구, 정부ㆍ공기업 재정부담 가중=주거복지는 국민이 건강한 삶과 행복을 유지하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주거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제공되는 서비스다. 일반 주택 시장에 진입하기 힘든 저소득층과 사회 취약계층에 저렴한 비용으로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는 1989년 주택 200만호 건설 계획과 함께 도입된 영구임대주택을 비롯해 50년 임대주택, 국민임대주택 등 주택공급 중심의 주거복지정책을 펴고 있다.
이 같은 신규 건설 형태뿐 아니라 기존 재고주택을 매입해 저소득층이 거주할 수 있도록 하는 매입임대주택이나 전세금을 지원하는 전세임대주택 등도 주거복지사업의 일환으로 추진되고 있다. 이러한 주거복지사업은 중앙정부, 특히 LH와 SH공사 등 공기업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2011년 말 현재 우리나라의 전체 임대주택은 146만호로 전체 주택재고량의 약 8%가량을 차지한다.
다양한 임대주택사업은 주택 시장을 안정시키고 국민 주거복지에 기여하고 있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함께 정부ㆍ공기업의 재정부담을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또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주택정책 때문에 주거복지제도 역시 일회적ㆍ단절적이며 보건ㆍ교육 등과 같이 다른 정부부처나 지방정부가 시행하는 복지프로그램과의 연계성이 부족해 중복투자 논란도 일고 있다.
◇고령화 사회 대비한 맞춤형 정책 나와야=김정호 한국개발연구원(KDI) 교수는 이날 '한국의 주거복지 및 공공정책'이라는 주제강연을 통해 우리나라 주거복지제도의 문제점을 확실한 비전과 목표, 원칙에 따라 체계적으로 잡혀 있지 않고 효율성이 떨어지며 고령화 등 인구학적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신규 건설 중심의 주거복지사업은 한계가 있고 민간 부문의 참여가 부족하며 소득 중심의 공급기준 신뢰도도 떨어진다고 비판했다.
김 교수는 "주거복지사업과 관련한 효용분석에 따르면 국민임대주택이나 다가구매입 임대주택 등 모든 프로그램에 대한 소비자 만족도가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 "공급과 운영ㆍ관리개선에 대해 보다 심도 깊은 논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이어 고령화 등 인구학적 변화에 대해 보다 적극적인 대응을 주문했다. 저소득층 노인부부와 무주택 1인 노인가구가 크게 늘면서 심각한 주택부족과 임대료 상승이 예상되고 있고 특히 가정 내 안전사고에 취약한 고령자에 대한 다양한 재가 서비스가 필요한 시점이다. 김 교수는 "고령자 지원 프로그램이 있지만 교통비 지원 등에서 여전히 한정적이고 고령자 관련 주택프로그램 역시 전용 국민임대주택 건설과 같이 한시적인 수준"이라면서 "건강과 의료조건, 사회경제적 상태, 의료ㆍ건강 관리 등을 고려해 다양한 배경의 노인 주거욕구에 맞는 주거복지사업이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이 밖에 김 교수는 자가 소유가 어려운 저소득층뿐 아니라 임대주택 수요가 있는 중산층에 대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중산층의 주거욕구와 선호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이들을 대상으로 한 임대주택재고를 늘리는 한편 관리개선을 위해 민간임대주택산업이 보다 적극적으로 활성화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저소득층에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것으로 주거복지가 실현되는 것은 아니며 자립할 수 있도록 생활지원이 함께 이뤄져야 한다"면서 "주거복지서비스가 다른 정부부처와 지방정부가 제공하는 의료서비스와 교육ㆍ공공교통 등 다양한 복지서비스와 연계돼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공공기관뿐 아니라 비영리기관ㆍ시민단체ㆍ종교단체 등 민간 부문과의 파트너십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주거복지정책에 민간 부문 참여 확대해야=토론에 나선 해외 석학들도 이 같은 김 교수의 제언에 공감을 표시하며 공공 부문의 지속적인 역할과 함께 민간과의 협력을 강조했다. 윌리엄 클라크 미국 UCLA 교수는 "경제발전을 이룬 아시아의 다음 혁명은 복지가 될 것으로 보이지만 보건ㆍ의료에 비해 주거복지는 주요 정책으로 다뤄지지 않는 것 같다"면서 "임대주택은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관리를 더 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로테 젠슨 덴마크 코펜하겐대 교수는 "민간과 공공 부문은 문화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정책을 마련해 함께 실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을 수밖에 없다"면서도 "시민사회와 같은 제3자에 책임성을 부여하고 시민의 참여를 보장해 다양한 의견이 주거복지정책에 반영되는 메커니즘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LH 창립 3주년과 토지주택연구원에서 발간하는 학술지 'LHI 저널' 창간 2주년을 맞아 국내 주거복지의 현실을 진단하고 우리나라에 맞는 정책과 실현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이날 컨퍼런스에는 국내외 전문가 7명의 주제발표를 비롯해 11개 국가에서 총 26편의 관련 논문이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