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6월5일] 6일 전쟁


1967년 6월5일 아침7시45분, 이스라엘. 곳곳에서 전투기들이 떠올랐다. 3차 중동전쟁의 발발 순간이다. 이스라엘의 프랑스제 미라지Ⅲ 전투기들이 지중해 쪽으로 사라진 지 2시간여, 이집트 공군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시나이 반도의 이집트군 레이더망을 피해 지중해를 돌아온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23개 공군기지를 철저하게 부쉈으니까. 전쟁의 승패도 여기서 갈렸다. 제공권을 장악한 이스라엘은 마음껏 전선을 휘저었다. 이스라엘 지상군은 시나이 반도는 물론 예루살렘과 골란고원에서 요르단과 시리아를 물리쳤다. 승리를 따내는 데 걸린 단 6일 동안 국토는 5배나 넓어졌다. 이스라엘이 압도적인 인구 차이와 병력 수를 딛고 ‘6일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요인은 크게 세 가지. 정신력과 미국의 지원, 과학기술 덕이다. 전투 와중에 이스라엘이 미국의 정보수집함 ‘리버티’호를 공격, 승무원 292명 중 34명이 죽고 171명이 부상 당했을 때도 워싱턴은 사상자 수를 10여명으로 축소 발표할 만큼 이스라엘을 싸고 돌았다. 이스라엘이 2차 대전의 유물인 M-4 셔먼 전차를 개조해 소련이 이집트에 제공한 최신형 T-55전차를 깨뜨린 점은 군사과학기술의 개가로 꼽힌다. 이스라엘은 당시 노획한 900여대의 T-55 전차를 개조해 현역 전차로 굴리다 최근에는 시가전용 보병전투차 ‘아크자리트’로 개조해 사용하고 있다. 종전 후 아랍세계는 석유공급을 60% 감축하고 나섰다. 석유무기화는 공급과다라는 수급환경과 산유국 간 분열로 실패했지만 6년 뒤 발생한 4차 중동전(10월 전쟁) 직후에는 1차 석유위기 파동으로 이어졌다. 승리와 패배가 빚은 환상과 복수심은 질기디 질기다. 중동의 반목과 군비경쟁은 갈수록 깊어지고 유가도 춤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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