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부당이득 반환청구 가능하지만 법적 공방 여지

■ 부당인출 예금 환수될까<br>사전인출 동기 입증 힘들고 사유재산권 침해 논란도


'국회의원들의 닦달에 어쩔 수 없이 내뱉은 립서비스인가, 법적으로 가능한 조치인가?' 영업정지된 저축은행의 사전 부당인출예금을 환수하는 방안을 놓고 금융권과 법조계에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논리적으로 부당인출예금 환수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법적 다툼의 소지가 적지 않은데다 사유재산권 침해 문제가 있어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많다. ◇채권자 취소권=금융감독원 내에서 가장 유력하게 거론되는 방안은 '채권자 취소권(민법 406조)'이다. '채무자가 채권자를 해함을 알고 재산권을 목적으로 법률행위를 한 때에는 채권자는 그 취소 및 원상회복을 청구할 수 있다'는 규정이다. 이 조항은 여러 사람으로부터 돈을 빌린 채무자가 한 사람의 채권자에게만 돈을 갚아 다른 채권자에게 손해를 끼친 경우 다른 채권자가 원상회복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한다. 다시 말해 채무자가 돈을 빼돌렸을 경우 채권자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규정이다. 이번 사건의 경우 채무자인 저축은행이 일부 예금자(채권자)에게 예금을 지급함으로써 다른 다수의 채권자에게 돈을 갚지 못했기 때문에 채권자 취소권이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이 금감원의 논리다. 언뜻 그럴듯한 논리지만 법정 공방에서 승리하기는 쉽지 않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우선 돈을 받아간 채권자에게 '다른 채권자를 해할 수 있다는 인식(악의)'이 있었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하지만 사전에 돈을 인출해간 동기를 알아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문제가 있다. 재경 법원의 한 판사는 "돈을 미리 빼간 일부 예금자들과 은행이 미리 공모했다는 정황이 입증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모까지는 아니더라도 다른 채권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는 가능성만 인식했다면 악의가 인정될 수 있다는 견해도 있다. 절차상으로도 복잡하다. 채권자 취소권은 사전에 돈을 찾아가지 못한 일반 예금자들이 소송의 주체(원고)가 되는데 이들이 소송 비용을 지불하면서까지 법정공방을 벌일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부당이득 반환청구=법조계에서는 '채권자 취소권'보다 '부당이득 반환청구소송'이 더 가능성 높은 대안이라는 의견도 있다. 이 소송은 '법률상 원인 없이 이익을 얻고 이에 따라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때 이익을 반환해야 한다'는 민법 741조를 근거로 한다. 우선 저축은행 임직원이 은행에 찾아오지도 않은 VIP나 친인척을 위해 허위의 예금청구서를 작성해 예금을 이체해준 경우가 해당한다. 예금 청구라는 행위 자체가 없었으므로 예금이체가 무효이고 따라서 이체금액의 반환을 청구할 수 있다는 얘기다. 저축은행 임직원과 VIP, 또는 친인척이 공모를 통해 예금을 빼낸 경우도 부당이득 반환청구소송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견해가 있다. 이 경우 VIP와 친인척은 '배임'의 공범이 되고 예금을 인출한 행위는 민법 103조의 '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에 해당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이 조항은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예금인출 행위가 무효이므로 부당이득반환청구를 통해 예금을 환수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이 소송은 해당 저축은행이 원고로 나선다는 점에서 '채권자취소권'보다 소송제기 절차가 간단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만 이 경우에도 자신의 예금을 찾아간 것을 부당이득으로 볼 수 있느냐는 문제가 남는다. 민사소송 전문인 채근직 변호사는 "사전 예금인출을 해준 행위가 형사상 배임이라면 민사적으로는 반사회적 행위에 해당된다고 볼 여지가 있다"며 "이 경우 '채권자 취소' 소송보다는 '부당이득 반환청구'가 더 가능성 있는 환수 방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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