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9월23일] 조총


1543년 9월23일(음력 8월25일), 일본 종자도(種子島ㆍ다네가시마). 대형 난파선 한 척이 나타났다. 중국인 선원 110여명에 끼인 남만인(南蠻人ㆍ포르투갈인) 3명의 소지품에는 못 보던 물건이 있었다. 천둥번개가 내리는 남만인의 작대기, 즉 철포(鐵砲ㆍ뎃보)가 일본에 전래된 순간이다. 신무기의 위력에 놀란 종자도주는 당시 일본에서 통용되던 명나라 영락전 4,000필(匹)을 내주고 두 자루를 구입했다. 요즘 돈으로 10억원에 해당되는 돈이다. 일본인들은 장인의 딸을 포르투갈 기술자에게 바치며 총포제작기술을 빼냈다. 종자도의 신무기, 철포는 바로 일본 내륙으로 퍼졌다. 얼마 후 일본은 전세계 화승총 보유량의 절반을 차지하는 나라로 떠올랐다. 철포, 즉 조총(鳥銃)은 일본을 통일시키고 조선을 임진왜란의 잿더미로 만들었다. 외딴섬의 지도자가 첨단기술을 보유한 표류자를 우대한 결과다. 조선도 기회는 있었다. 임진왜란 직전 대마도주가 조총 두 자루를 헌상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 선조수정판과 유성룡이 지은 징비록에 나온다. 조선은 첨단무기를 어떻게 했을까. 창고에 처박았다. 활보다 연발 사격속도가 느리고 사정거리가 떨어진다는 이유를 붙였지만 조총이 박대 당한 진짜 이유는 왕을 비롯한 대신들이 발사음에 놀랐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19세기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서양 신문물의 위력을 실감한 일본은 명치유신으로 근대화에 성공한 반면 쇄국을 고집한 조선은 망국의 길을 걸었다. 역사는 되풀이된다. 외국의 유명 대학 부속병원이 동북아 수요를 노리고 영종도 일대에 분원 설치를 추진했으나 한국 의사들의 반대에 밀려 싱가포르로 발길을 돌렸다는 소식이 들린다.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기회를 놓치는 사례가 어디 이뿐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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