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면 미국에 대해서는 납작 엎드리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아베 총리는 '희망의 동맹으로'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자신이 워싱턴DC의 2차세계대전기념관에 다녀온 것을 언급한 뒤 "깊은 후회의 마음으로 한동안 거기서 묵념했다"며 "일본과 일본 국민을 대신해 2차 대전에서 숨진 모든 미국인의 영혼에 깊은 경의와 함께 영원한 위로를 보낸다"고 말했다. 이어 "태평양과 인도양까지 넓은 바다를 법의 지배가 관철하는 평화로운 바다로 삼아야 한다"면서 미국을 도와 중국의 해양진출을 강력하게 저지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아베의 이날 연설은 한마디로 강자와 약자라는 이분법에 따른 외교 행각의 전형적 사례라 할 수 있다. 물론 이에 대한 역풍도 만만치 않았다. 에드 로이스 미 공화당 하원 외교위원장은 성명을 통해 "동아시아 간 관계를 괴롭히는 과거사를 적절하게 해명할 기회를 활용하지 못했다"고 비판했고 엘리엇 엥겔 민주당 의원은 "제2차 세계대전 동안 성노예로서 수모를 당한 피해자들에게 사과를 했어야 했다"고 지적했다. 현지의 일부 언론에서도 같은 성격의 비판이 이어졌다.
하지만 냉혹한 국제정치의 실상을 목격하는 현장이라는 점에서 우리 역시 새로운 외교무대가 전개되고 있음을 명확히 인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 아베와 일본 외교에 대한 도덕적 평가와 별개로 이제 강력한 미일동맹은 우리에게 상수(常數)로 다가오고 있다. 하루빨리 국제정치의 냉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한미동맹 강화와 한중 간 전략적 협력 확대 그리고 필요하다면 한일관계 개선에도 외교역량을 집중해야 할 때다. 외교정책에 신축성과 균형감각을 담보하지 못할 경우 국민 생존권에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