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 간 책임 떠넘기기로 원인불명의 질환을 앓고 있으면서도 희귀질환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환자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희귀병 환자들은 정부가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 의료사각지대로 내몰리는 것을 막아야 한다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촉구하고 있다. 18일 보건복지부와 건강보험심사평가원ㆍ통계청 등에 따르면 희귀병으로 인정받기 위한 질병코드 적용을 놓고 부처 간 입장 차이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국내에서는 건강보험 급여 지급 등을 위해 모든 질병을 코드화하고 있다. 통계청이 만든 한국질병분류(KCD)라는 분류체계로 세계보건기구(WHO)의 국제질병분류(ICD)를 국내에 맞게 적용하고 있는 것이다. 복지부는 KCD로 분류된 환자 가운데 희귀성(환자 수 2만명 이하)과 난치성(현재 의학 수준으로 치료가 불가능하며 환자의 정신적ㆍ경제적 부담이 많은 질환), 경제적 부담 등을 고려해 해마다 희귀난치성질환 산정특례 대상을 결정하고 있다. 특례 적용을 받으면 외래 본인부담률(30~60%)이 10%로 줄어든다. 지난해 말 기준 138종의 질환에 55만명이 해당한다. 그러나 상당수 희귀병 환자들은 KCD 자체가 없어 이 같은 정부의 혜택을 받기 힘든 상황이다. 복지부의 한 관계자도 "최근 한 방송에 소개된 최서연양이 산정특례 대상이 되지 못하는 것은 희귀질환자로 인정받기 위해 필요한 KCD가 없기 때문"이라며 "최양과 같은 증상이 국내에 한 명뿐이라도 관계없지만 원인을 찾지 못한다면 앞으로도 희귀병 환자로 적용 받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문제는 KCD 개정에 몇 년씩 걸린다는 점이다. 지난 1952년 제정된 KCD는 60여년간 고작 6번 개정됐다. 최근에는 2002ㆍ2007ㆍ2010년에 개정돼 간격이 짧아졌지만 희귀병 환자가 기다리기에는 너무나 길다. 복지부에 산정특례 요청도 지난해에 101건, 올해 24건이 접수됐지만 아직 제대로 검토되지 않았다. 신현민 한국희귀ㆍ난치성질환연합회장은 "같은 잣대로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외국의 경우 의사가 소견서만 써줘도 희귀난치성질환으로 인정받기도 하는데 우리나라는 코드 분류를 갖고 몇 년째 부처 간 핑퐁게임만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KCD를 만드는 통계청은 필요한 경우 심평원이 가능한 방법을 찾으라는 입장이다. 통계청 통계주무팀의 한 관계자는 "일일이 코드를 만드는 것은 효율적이지 않다"며 "ICD를 준용해 심평원이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찾으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심평원은 통계청이 해야 하는 일을 자신들에 떠넘기는 것은 맞지 않다는 입장이다. "의료진에 따라 진단이 달라질 수 있고 진료비 혜택을 받기 위해 악용할 우려도 있는 만큼 객관적으로 명확하게 판단하도록 통계청에서 정확하게 코드 분류를 해줄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부처 간 입장 차에 대해 희귀병 환자들은 주무부처인 복지부의 의지가 부족하다고 한목소리를 내며 하루 빨리 대안을 마련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