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멜은 막스베버와 더불어 독일 사회학, 더 나아가 사회학의 이론적 표준을 제시한 인물이다. 그는 평생 31권의 저서와 256편에 이르는 방대한 글을 남겼다.'돈의 철학'은 그 중 1900년에 나온 그의 대표작으로 손꼽힌다.
"돈은 어떻게든 무차별화되고 외화(外化)되는 모든 것에 대한 상징이자 원인이다. 그러나 돈은 또한 오로지 개인의 가장 고유한 영역 내에서만 성취될 수 있는 가장 내면적인 것을 지키는 수문장이 되기도 한다."
'돈의 철학'에 나오는 이 구절은 짐멜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함축한 부분이다. 짐멜의 돈에 대한 연구는 자본주의 옹호에 가깝다. 짐멜은 당시에 유행하던 자본주의 비판에 맞서 자본주의가 이제 그 거대한 흐름을 막을 수 없는 역사적ㆍ사회적 토대가 됐음을 강조한다. 그가 보기에 자본주의는 당시의 비판처럼 문화의 파괴나 타락의 원인이 아니다. 그는 자본주의 자체를 문화, 즉 하나의'물질문화'로 본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물질문화는 새로운 정신문화의 물질적ㆍ경제적 토대가 된다는 말이다.
짐멜은 자본주의 화폐경제의 토대 위에서 어떻게 문화가 가능한가를 모색했다. 물질문화와 정신문화의 결합을 시도한 것이다. 그는 흔히 영원히 만날 수 없는 것으로 여기는 돈과 영혼을 결합시킨다. 돈은 그 자체로는 아무런 성격이나 특성을 갖지 않는다. 단지 많고 적음의 수량만이 유일한 기준이다. 개인의 주관적 인격적 특성을 무시하고 단순히 수량적 관계로 환원함으로써 평준화시킨다. 탈개성화ㆍ탈인격화를 추동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편으로 돈은 현대인의 사회적 삶과 문화적 삶의 물질적ㆍ경제적 토대가 된다. 모순적이게도 각각의 개성과 인격성을 추구하는 건 다름 아닌 돈의 소유에 의해 주어진다. 노동과 투쟁의 유물주의적 단계를 벗어나 사회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 주관적 삶의 양식에 관심을 갖고 발전시킬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즉, 개인의 영혼으로부터 멀어지게 만든 돈이 개인을 다시금 영혼으로 돌아가게 만든다는 말이다.
짐멜이 돈의 속성을 철학적으로 탐색하며 보여주고자 하는 지점도 바로 이 물질문화와 정신문화의 상호작용에 있다. 그에 따르면 합리적이고 효율적인 화폐경제는 건전한 정신문화가 발전할 수 있는 전제조건이다. 그러나 이는 저절로 되는 것은 아니다. 돈은 그 속성이 인간을 점점 더 양화(量化)하고 탈인격화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중요한 것은"정신문화를 발전시키려는 개인의 의지와 능력"이라는 게 짐벨이 주장하는 핵심이다. 5만 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