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달러 위상 흔들… '다중 결제통화' 되나

■ "달러 쓰지 말자" 中·러시아 공조 나섰다<br>세계 1·3위 외환보유액 앞세워 美에 도전장<br>"다변화 바람직하나 국제금융시장 준비 덜돼"


미국발 금융위기의 여파로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가 흔들리자 중국과 러시아가 도전장을 내밀고 나섰다. 당장은 달러화 기근에 대한 대비책 차원이 짙지만 이번 러-중 회동을 고리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주도해온 국제금융질서가 다중 결제통화 체제로 전환되는 시금석이 될지 주목된다. 전문가들도 오래 전부터 앞으로 기축통화로서의 달러화의 지위가 위기를 맞을 가능성을 예견해왔다. 28일(현지시간) 중국과 러시아는 달러화를 기축통화로 하는 국제경제 체제를 개편하기 위해 무역대금 결제시 위안화나 루블화를 사용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세계 1위와 3위 외환보유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달러화를 사용하지 않으면 달러화 자체뿐 아니라 미국 경제에 타격이 가해질 것으로 보인다. 기축통화 발행에 따른 세뇨리지 게인(seigniorage gainㆍ통화발행국의 경제적 이득) 효과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가 28일 모스크바 연설에서 밝힌 “지금이 새로운 국제금융질서 건설에 가장 적합한 시기”라는 말은 미국발 금융위기에 대응하는 중국의 국가 전략이 잘 드러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는 중국이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를 다른 국가들과 나눠 가져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이번 기회에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 중국은 오래 전부터 기축통화의 다극화 체제를 원했다. 2조달러의 외환보유액이라는 막강한 힘을 바탕으로 중국 위안화를 비롯해 유로화, 영국 파운드화, 일본 엔화 등이 무역대금 결제 수단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것. 중국은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 위상을 흔들기 위해 먼저 아시아ㆍ유럽 국가들과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오는 11월15일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선진20개국) 회의가 미국 달러화의 기축통화 지위를 빼앗기 위한 첫 무대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국 지도부는 국제 경제무대에서 차지하는 달러화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미국이 전세계의 부를 착취해왔다고 보고 있다. 중국 외교부의 여성 대변인 장위(姜瑜)는 이날 브리핑에서 “중국은 다음달 15일 미국에서 열리는 G20 회의의 참석 요청을 받았고 적극 참석할 것”이라면서 “회의 참가국들이 실무적이고 효율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을 위해 노력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스젠쉰(石建勛) 중국 퉁지(同濟)대학 경제학과 교수도 “음울한 금융위기의 현실 속에서 사람들은 미국이 달러화의 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세계의 부를 착취해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며 “이제 세계는 미국이 국제경제에서 차지해온 지배적 지위와 달러화의 지배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했다. 전세계 무역 거래자나 투자자들이 달러화를 회피하는 경향도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특히 남미ㆍ중동 등을 중심으로 일본 엔화나 유로화, 중국 위안화 등을 결제 통화로 활용하자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동남아에서는 이미 위안화가 제2의 달러화로 기능하고 있다. 중국은 다음달 3일 타이베이(臺北)에서 열리는 양안회담에서도 양안간 무역대금 결제수단을 미국 달러화 대신 양안 통화로 대체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이를 위해 중국은 금융감독 당국자들과 10대 은행장들을 대표단에 대거 포함시켰다. 중국이 앞장서 내건 ‘반달러 기치’에는 러시아와 남미, 아시아의 다수 국가들이 동조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국제사회를 고통에 빠뜨린 신용위기는 미국의 잘못된 금융시장 관리에서 비롯됐다”면서 시스템 개혁을 주장하고 있으며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도 “오늘날 전세계가 달러로 인해 심각한 고통을 받고 있다”면서 중국과의 공조의지를 재확인했다.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도 오래 전 “금융위기가 선진국의 금융기관을 거대한 카지노로 만든 투기자본 때문에 초래됐다”는 견해를 밝히면서 “다음달 워싱턴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서 투기자본 규제를 포함해 세계 금융 시스템의 새로운 원칙을 세우기 위한 결정이 나오기 바란다”고 말했다. 또한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의 12개 국가는 최근 무역거래에서 미국 달러화 사용을 줄이고 자국통화 사용을 확대하기로 합의했으며 이밖에 태국과 이란을 비롯한 아시아ㆍ아프리카 국가들도 미 달러화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려는 움직임을 본격화하고 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그러나 위안화는 물론 엔화ㆍ유로ㆍ파운드화의 국제화가 바람직하지만 달러 외에 결제통화를 다변화하기에는 아직 국제 금융시장이 준비가 덜 돼 있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다. 다른 통화들이 달러를 대체하기에는 해당 국가의 경제력뿐 아니라 정치ㆍ사회적 선진화와 안정화가 보다 진전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밍 중국국제금융공사(CICC) 수석 연구원은 “글로벌 금융위기는 위안화의 국제화에 더 없는 호기지만 지금 당장은 실현할 수 없다고 본다”면서 “중국경제의 안정적인 발전이 선결돼 역내통화로서의 역량을 키워야 하고 아울러 위안화의 신뢰성 확보를 위해 환율의 시장화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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