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비운의 ‘황태자’들

지난 2000년 `왕자의 난`을 거쳐 현대그룹의 법통 승계자로 우뚝 섰다가 불과 3년여 만에 스스로 삶을 마감한 정몽헌 현대아산 회장. 그는 선친의 유지에 따라 대북관계 개선을 위해 필생을 바친 남북 화해의 산 증인이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의 삶은 재벌 황태자들의 비운의 일생을 보여준 또 하나의 사례였던 것도 사실이다. 과거 경영권을 세습 받은 재계의 `황태자`에서 급전직하해 골짜기로 떨어졌던 재벌 2세 경영인들의 일생을 다시 한번 보여준 셈이다. 아직 최종 결론은 나지 않았지만, 분식회계 혐의로 영어의 몸이 된 SK그룹 최태원 회장도 이 범주에 들어가는 대표적 2세 경영인이다. 최 회장은 형제간 대물림으로 1.5세 경영인으로 불린 고 최종현 회장으로부터 경영권을 넘겨 받은 뒤 친정체제를 굳히고 막 경영 전면에 나서려는 시점에 계열사 분식회계 파문에 휘말렸다. 그 여파로 최 회장 자신이 구속된 것은 물론 핵심 계열사인 SK글로벌은 채권단공동 관리에 들어갔고, 외국계 소버린 자산운용의 SK㈜ 지분 매집으로 그룹 경영권마저 위협 받는 궁지로 내몰렸다. 비운의 2세 경영인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것은 `대마불사` 신화가 깨진 외환위기 전후. 그 첫 단추는 지난 95년 외환위기를 2년여 앞두고 부도를 낸 유원건설의 2세 경영인 최영준 사장이었다. 이후 외환위기의 파고가 높아지면서 ▲동아(최원석) ▲우성(최승진) ▲한보(정보근) ▲삼미(김현철ㆍ김현배) ▲진로(장진호) ▲쌍방울(이의철) ▲한라(정몽원) 등 유수의 재벌그룹 2세 경영인들이 꼬리를 물듯 몰락의 길을 걸었다. 정보근 한라 회장 등 일부는 끈질기게 재기를 시도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가시적 결실은 보지 못하고 있다. 한국적 자본주의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인 `재벌`의 역사. 재계는 이미 2세를 거의 지나 본격적인 `3세 경영` 시대를 앞두고 있다. 삼성그룹 창업주 이병철 회장을 승계한 이건희 회장의 뒤를 이어 경영수업을 받고 있는 아들 이재용 상무는 상징적 인물이다. `창업보다 수성이 어렵다`는 재계의 금언. 재계의 한 원로는 “2세들이 창업주의 참다운 기업가 정신을 본받아 한국 재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구축해주길 바란다”고 고언했다. <김영기기자 young@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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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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