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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피아(관료+마피아)' 문제를 근절하는 데 싱가포르의 공기업 지주회사인 '테마섹' 모델을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테마섹은 정부나 정치권으로부터 독립된 이사회를 통해 공기업 임원을 임명, 정부와 공기업 간 유착의 고리를 차단하고 있는데 관피아 근절대책을 찾고 있는 우리나라가 본받을 만한 모델이라는 분석이다.
김종석 홍익대 경영대학장은 20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건전재정포럼 제9차 정책토론회'에서 "우리나라에 테마섹 모델이 도입된다면 정부 소관부처가 공기업을 함부로 주무르지 못하고 임원의 낙하산 등 정치적 임명도 차단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테마섹은 싱가포르 공기업들의 지주회사이자 국부펀드로 정부가 100% 투자한 회사다. 하지만 상법상의 회사로 민간기업의 지위를 갖고 있다. 특히 이사회는 정부로부터 독립적인 순수 민간위원으로 구성돼 있으며 이들이 공기업 임원의 인사를 단행한다. 그렇다 보니 공무원들 간 유착이나 대통령의 뜻에 따라 공공기관장이 결정되는 우리나라와 달리 업무에 적임인 인사가 기관장에 임명된다.
특히 테마섹 이사회는 공기업 임원을 임명하는 최고 기준으로 업무 성과를 꼽고 있다. 이사회는 매년 공기업의 경영을 평가해 임원의 유임 여부를 결정하고 임원진 보너스까지 책정한다. 김 학장은 "테마섹은 국부펀드로 더 많은 수익을 내는 것을 최대 목표로 세우고 있다"며 "이렇다 보니 임원을 임명할 때 공무원 간의 유착 같은 것은 생각할 수도 없다"고 밝혔다.
이렇게 기관장이 투명한 절차에 따라 선임되니 경영성과도 높다. 테마섹 자회사인 싱가포르 창이공항그룹은 자기자본수익률(ROE), 순이익 등 경영효율성에서 세계 공항 중 1위다. 창이공항그룹은 전세계 12개국 25개 공항을 컨설팅하고 있기도 하다. 또 테마섹 산하의 PSA코퍼레이션이 운영을 맡는 싱가포르항도 세계에서 가장 이익을 많이 내는 항만이며 세계 25개 항구에 시스템을 수출하고 컨설팅을 제공해 로열티를 받는다. 우리나라 공공기관에 전문성이 없는 임원이 앉아 경영효율성을 떨어뜨리고 퇴직한 공무원이 업무를 소홀히 하는 것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김 학장은 우리나라가 당장 테마섹 모델을 도입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려울 수 있지만 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와 같이 이와 성격이 비슷한 기관이 이미 존재하므로 이를 수정, 확대해나가는 방식을 생각해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 등 각 연구기관장들의 경영성과와 연구실적 등을 평가해 이를 국회·기획재정부 등에 보고한다. 연구기관들에 국한된 이 모델을 공기업 및 공공기관 전반으로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날 포럼에서 김 학장의 테마섹 모델은 큰 호응을 얻었다. 허승호 한국신문협회 사무총장은 "우리나라에 테마섹 모델이 도입되면 관피아 등과 관련된 문제의 절반이 해결된다"고 밝혔다.
한편 '공기업 개혁의 지름길은?'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날 포럼에서는 방만경영으로 지탄을 받고 있는 공기업들을 개혁하는 방안에 대한 활발한 논의가 오갔다. 박진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대통령 직속의 개혁추진 조직이 신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경제기획원이나 기획예산처와 같이 정해진 관리업무 없이 타 부처 소관사항을 개혁하기 위한 조직이 있었는데 현재는 없다"며 이 개혁전담 조직이 공기업 개혁을 전담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