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송현칼럼] 한국 대학 변해야 한다

한민구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학장>

우리나라 대학은 열악한 여건에서도 한국경제 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해왔다. 저렴하고 풍부한 인력을 공급해 중동건설, 중화학공업의 육성 및 반도체 등 첨단기술 산업의 세계적 수준 확보 등에서 핵심적 역할을 맡아왔다. 해방 직후 한국인 대학졸업자 수는 각 부문별로 손꼽을 정도였으나 최근 우리나라 대학의 진학률 및 인구 천명당 대학생 수는 세계에서 미국ㆍ캐나다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그러나 대학의 양적 팽창은 질적 향상과 상응하지도, 우리 사회의 변화에 앞장서지도 못하고 있다. 오히려 사회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따가운 눈총을 받고 있다. 특히 대학의 고객이라고 할 수 있는 기업 등 경제계에서 대학 졸업생들의 능력에 관해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기업이 필요로 하는 교육을 대학이 시키지 못한다는 불만은 대학교육의 질적 문제를 단적으로 말해주는 것이다. 대학의 문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눠질 수 있다. 하나는 학생선발 및 정원문제이며, 다음으로는 입학한 학생들의 적절한 교육 및 훈련문제다. 입시제도를 둘러싸고 학부모들과 중고등학생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으며, 특히 학업능력이 우수한 학생들과 부족한 학생들의 선별 및 차등화는 우리 사회에 큰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대학입시 뉴스가 사회의 톱뉴스가 되고 대학수학능력시험 문제가 쉽다 어렵다 또한 문제가 조금 틀렸다 등으로 대통령이 사과를 하고, 사교육비 문제가 국민경제에 큰 폐해를 주고 있는 상황에서 입시문제 개선은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제다. 대학입시가 대학의 문제가 아니라 온 나라의 문제로 귀속되고 있는 상황에서 대학별로 대학에 맞는 학생들을 선발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교육인적자원부는 공교육의 정상화를 위해 고등학교 학생들의 내신을 중시하고 특별한 시험 등을 억제하고 있다. 본고사 금지, 고교서열화 금지, 기여입학제도 금지 등이 세 가지 핵심적 규제로 꼽힌다. 그러나 전국 2,000여개 고등학교의 학력차가 분명히 존재하고, 특히 과학고ㆍ외국어고 등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이 몰려 있는 고등학교와 학업능력이 처지는 고등학교와의 차별화가 금지되고 있는 것이 합리적인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또한 70만여명의 수험생을 상대로 획일적으로 치러지는 수학능력시험은 객관성과 공정성을 제공하고 있으나 상대적으로 우수한 학생들의 창의성을 평가하기에는 거리가 멀다. 창의성을 확보하기 위한 입시제도의 개선과 고등학교 학생들의 학습능력을 반영할 수 있는 내신제도의 개선이 조속히 시행되기 위해서는 대학입시를 대학에 반드시 돌려줘야 한다. 대학도 급속히 변화하는 사회에 대응하기 위한 유연한 정원조정에서 실패한 점을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필요가 있다. 경제사회 구조의 변화에 따른 전공 분야별 정원배정을 하지 못하고 기존의 교수 중심의 전공체제를 유지하고 있으며 수요에 따른 공급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구태의연하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어렵다. 수요가 적은 분야와 많은 분야가 시대별로 변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대응이 부족해 필요한 인재들을 적시에 공급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특히 반성해야 한다. 들어온 학생들에 대한 교육문제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대학교육의 위기는 세계화라는 큰 흐름 속에서 분석돼야 한다. 인터넷의 급속한 확대로 많은 정보를 서로 공유할 수 있으며, 특히 전세계 대학의 강의록 및 강의내용이 인터넷에 떠 있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우수한 강의와 우수하지 못한 강의가 비교되면서 선진국의 우수한 강의수준으로 우리 대학이 바뀌어야 한다는 학생들과 사회의 요구가 자연히 나오고 있다. 즉 세계화와 정보화에 따른 큰 물결에서 우리 대학은 안이한 자세를 버리고 경쟁력 확보를 위해 뼈를 깎는 자성과 개혁을 추진해야 하며 사회도 적극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학의 구성원인 교수와 학생의 엄중한 평가를 통한 보상체제가 확립돼 대학개혁의 동기를 부여하는 것이다. 교수 연봉제 및 엄정한 학사관리 없이 대학의 변화는 이뤄질 수 없다. 이러한 대학의 변화는 막대한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며 국제적 수준의 교육연구시설의 확보 없이는 말로만 하는 공허한 개혁이 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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