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리빙 앤 조이] 수필집 '자전거여행' 작가 김훈

"자전거로 돈 벌겠다고 했더니 집사람은 배달일 하려는 줄 알더구만"



나는 평소에 김훈에 관한 한 준비된 기자라고 생각했다. ‘빗살무늬토기의 추억’을 제외하면 그의 모든 책을 사서 여러 번 읽은데다, 그와는 두 차례나 함께 신문을 만들어 본 적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를 만나서 문학에 관한 인터뷰를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문학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주제에 괜히 두서 없는 질문을 했다가 망신을 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터뷰 전날 서은영기자에게 인터뷰를 하라고 지시를 했다. 그런데 퇴근길 지하철 안에서 전화벨이 울렸다. “부장, 김훈 작가를 인터뷰 해도 제가 의미 전달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네요. 같이 가 주세요.” 후배의 자신 없는 목소리를 듣자 면피의 해방감은 졸지에 불안으로 바뀌었다. ‘입사한지 얼마 안 되는 신참을 보냈다가 기사 그르치면 나만 고생이지’ 하는 생각에 미치자 머릿속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집에 들어가자마자 5년 전에 읽었던 ‘자전거여행’을 찾아서 다시 읽기 시작했다. 어휴! 말년에 이게 무슨 고생인가. ▦우현석기자(이하 우)= 어쩌다 자전거를 타게 되셨나요. “올해 내 나이 60인데 자전거 타기 시작한지 10년 밖에 안됐어요. 쉰살 때 불광동에서 일산으로 이사를 했는데 일산은 길이 아주 좋더구먼. 임진강, 한탄강, 연천, 전곡 쪽으로 길이 뻗어있고, 그래서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어요. 처음엔 10만원도 안 되는 아주 싼 걸 하나 사서 타고 다녔는데, 깜짝 놀랐어요. ‘세상에 이렇게 좋은 기계가 있다니. 난 정말 50년을 헛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구. 그 때부터 자전거를 탔어요. 처음엔 좀 힘들었지만 석 달쯤 지나니까 임진강, 한탄강 까지도 가게 됐어요. 자전거가 너무 좋아서 집사람에게 ‘이제부터 자전거로 벌어 먹고 살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더니 아내는 내가 배달 일을 하겠다는 줄 알더구만. 자전거 타면서 책을 써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었는데, 결국은 ‘자전거 여행’ 두 권을 내서 약속을 지켰어요.” ▦우= 자전거로 전국을 여행하셨는데 차종은 산악자전거(MTB)인가요. 아니면 일반 자전거인가요. “산악 자전거요. 그 당시 50만원이었으니까 지금으로 치면 300만원은 줘야 살 수 있을거에요.” ▦서은영기자(이하 서)= 자전거를 타면 어떤 점이 좋은가요. “자전거를 타고 다니니 풍경에 대해 면밀히 들여다보게 되고, 평소 걸어다닐 때 보다 바람, 계절, 흙 같은 것이 잘 보이더라구. 동네 마다 또 계절 마다 흙이 다르고, 흙의 질감이 허벅지에 닿아 바로 느껴지더군요. 삶과 세계를 관능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거지요. 자전거를 타는 것은 몸이 시간 속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에요. 풍화(風化)되는 것이기도 하고…. 자전거를 타면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것이 위는 바람, 아래는 흙이라서 바람과 흙 사이를 저어 나가는 거요. 예를 들어 서울에서 부산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면 서울과 부산 밖에 느낄 수 없고, 기차를 타고 가면 차창 밖의 풍경 정도만 구경할 수 있어요. 하지만 자전거를 타고 가면 저녁노을, 산과 바다 같은 자연과 친화할 수 있어요. 그래서 자전거를 타면 살아있다는 것을 확실히 느낄 수 있는 거지. 게다가 엔진 없이 자기 힘으로 가는 거니까.” ▦서= 송구스럽지만 기계치(機械痴)라고 스스로 밝히신 적이 있던데 자전거는 직접 고치며 여행을 하셨나요. “자전거는 기계와 또 달라요. 몸의 동작을 고치는 거지. 내가 체인 끊어진 것까진 고칠 수 없지만 펑크 정도는 때울 수 있어요.” ▦우= 자전거로 여행하기 가장 좋은 길은 어디인가요. “계절마다 달라요. 가을에는 태백산맥을 넘어가는 인제에서 양양을 잇는 도로가 좋고, 봄에는 섬진강 따라 남원에서 구례, 하동 쪽으로 가는 19번 도로가 좋아요. 동해안 7번 도로는 아침 일출 무렵이 가장 좋은데 자전거가 해 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에요.” ▦우= 차로 여행할 때와 자전거로 여행할 때의 차이는 아무래도 고개를 지날 때 일 것 같습니다. 오르막과 내리막은 서로 비긴다고 하셨지만 그래도 힘든 구간이 있을 것 같은데 어디가 가장 힘드셨나요? “오르막이 너무 가파르면 걸을 수 밖에 없어요. 속도가 3㎞/h까지 내려가면 자전거가 쓰러져요. 그럴 땐 걷는 게 낫지. 내리막길은 타는게 아니고 가만히 앉아 있으면 되는 거고. 태백산맥을 넘어갈 때는 끝없는 오르막이 있어요. 꼭대기를 생각하면 못 올라가요. 언제 갈 수 있을까 생각하면 더 힘드니까. 길이라는 것은 원래 이런 것이라고 생각하면 결국 가게 되지요. 오르막을 오른 자만이 내리막을 즐길 수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둘은 같다고 말한 거요. 그러니 내리막을 보고 굳이 기뻐할 건 없어요.” ▦서= 자전거를 새로 살 때 마다 이름을 붙이시나요. 풍륜(風輪)은 어떻게 됐나요. 지금 타시는 새 자전거의 이름은 뭔가요. “지금 타는 건 풍륜 3호요. 1, 2호는 낡아서 이제 안 타지. 이름은 풍부한 감수성의 소산으로 지은 것은 아니고, 자전거를 가지고 밥벌이를 해야 하니까 이걸 브랜드화 해야겠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지은 거요. 교활한 의도지.” ▦우= 지난 7일 영암에서 열린 ‘전남도지사배 전국 MTB챌린저대회 답사에 참가하셨지요. 젊은이들 하고 경쟁하는 것이 힘들지는 않으셨나요? “대회라기 보다는 말 그대로 코스 답사였어요. 하지만 자연스럽게 레이싱이 벌어졌지요. 전국 시도의 베테랑들이 모였는데 내가 어떻게 이길 수 있겠어요. 하지만 꼴찌는 하지 않았어요. 올 여름은 너무 더워서 자전거를 안 탔는데 며칠 전부터 선선해져서 다시 타기 시작했어요.” ▦우= 자전거는 매일 타십니까. “타는 시간은 날 마다 달라요. 내가 요즘은 글을 안 쓰니 아침 9시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타요. 사실 자전거를 탈 수 있는 날은 일년 중 반도 안돼. 즐겁자고 타는 건데 여름엔 너무 더워서 오히려 괴로워요. 그래서 못 타는거요.” ▦서= ‘자전거여행’은 시리즈로 계속 펴 내실 생각이세요. “책을 내려면 기획을 가지고 자전거를 타야 하는데 그러고 있지는 않아요.나는 글을 쓰겠다고 마음을 먹으면 늘 전체적인 그림을 그려 놓아요. 자전거여행을 기획할 때도 그랬어요. 물론 그때 생각대로 전국을 다 돌았으면 열 권은 넘게 썼겠지.” ▦서= 자전거 여행 중 남한산성 부분은 소설 ‘남한산성’의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데 자전거 여행 자체가 새로운 소설의 소재를 찾는 과정인가요. “항상 그렇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소설 남한산성은 자전거 타고 놀면서 이미 반쯤 만들어 놓은거나 마찬가지 였어요.” 나는 그와 두 군데 직장에서 함께 일한 적이 있다. 여의도에 있는 한 신문사에 근무할 때 그와 함께 1008번 버스를 타고 다닌 적이 있는데, 그 때 그가 “나는 일산에서 여의도까지 자전거로 출근한 적이 있다”고 말한 것이 기억났다. ▦우= 여의도까지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 하신 적이 있지요. “몇 번 하다 그만 뒀어요. 한강 둔치 따라서 오갈 수는 있는데 몇 번 했더니 피곤하고 땀이 나서 일을 할 수가 없더라고.” ▦우= 요즘도 약주는 많이 하십니까. 자전거를 타면 숙취해소에 도움이 되나요. “지금은 옛날 만큼은 안 마셔요. 술 마신 다음 날 땀을 흘리면 숙취 해소에 많은 도움이 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까진 안 해요. 자리에서 일어나면 골이 깨지는데 어떻게 자전거를 타? 그 결심을 할 수 있다면 가능하겠지. 난 아예 그런 결심을 안 해요.” 문화부 기자도 아닌 우리가 작가 김훈을 언제 다시 만나 보랴. 이 참에 궁금한 질문이나 몇 가지 더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 기자로서 삶과, 작가로서 삶은 어떻게 다른가요. “기자들은 자기들이 자유로운 것 같다고 생각하지만 신문사 내에는 무서운 규율이 있어요.험한 일을 하는데다 정보를 취급하는 곳이니까 마감도 지켜야 하고 사실 확인도 철저히 해야 잖아요. 그래서 부장, 차장 같은 데스크들 한테 욕도 먹고 그러는거지. 그런데 기자를 안 하니까 아무도 나를 규율 해주는 사람이 없고, 통제를 해주지 않더라구. 규율과 질서의 강요 없이 내가 나 자신을 통제하니까 아주 힘들어요. 나 자신을 통제하지 못하면 결국 건달이 되는 거지. 글 쓰기 싫은 날도 써야 하고, 계속 놀면 안 되니까 내가 나를 다스려야 하는데 그게 힘들어요. 특히 장편소설을 쓴다는 것은 엄청난 기운이 들어가는 건데 내가 맨 날 술 마시고 놀면 그걸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 기자시절 김훈의 취재는 치열하기로 유명했다. 김훈의 평기자 시절, 문화부장이었던 이병일 서울경제 객원논설위원은 “나는 김훈의 취재태도를 의심해 본 적이 없다. 그는 항상 현장에서 혼신의 힘을 다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독자들은 그의 글이 타고 난 천재성 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나도 그의 천재성을 의심하지 않지만 그렇다고 김훈이 글을 쉽게 쓰는 스타일은 아니었다. 그는 기사를 쓸 때 머리를 쥐어 짜내듯 고민하고 쓰는 기자였다”고 말한 것이 생각났다. 실제로 자전거여행을 비롯한 그의 모든 작품, 전 페이지에는 취재의 흔적이 발자국 처럼 또박또박 찍혀 있다. ▦우= 이병일 위원 말씀으로는 기자시절 취재를 엄청 열심히 하셨다고 하던데 소설을 쓸 때도 그렇게 하시죠. “그 분이 몰라서 그렇지 나 농땡이 많이 쳤어. 한국일보에서 ‘문학기행’ 쓰던 시절엔 출장 사흘 다녀와서 이틀간 기사를 쓰면 진이 빠졌지. 그런데 자꾸 나를 보내는 거야. 요즘에 와서야 그 때 열심히 하길 잘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때는 힘들었어요. 아무튼 소설은 허구를 바탕으로 쓰는거지만 그 허구의 밑바닥에는 사실성이 갖춰져 있어야 하잖아요. 소설의 밑바탕이 되는 사실관계를 구성하는 요령은 기자 때 배운거요. 그러고 보면 기자라는 직업에 빚진 게 많지.” ▦서= 자전거여행에서는 여러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누고 그들의 삶을 파악하는 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나는 취재를 하는데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봐요. 현장에 가면 고기 잡는 노인에서부터 어린이들까지 여러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우리가 모르는 엄청난 사실들을 알고 있어요. 그리고 그들은 아주 도덕적인 사람들이에요. 한글 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고, 신문이고 방송이고 그런 것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그들은 인간의 관계는 어때야 하는지, 환경은 어떻게 보존해야 하는지 다 알고, 실천하며 살아요. 나는 자전거를 조금만 타고 나가면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좋아요. 내가 자전거를 타고 다니면서 이것 저것 물으면 시골 할아버지들은 ‘별 이상한 놈 다 보겠다’는 표정으로 ‘싱거운 소리하지 말고 빨리 가라’고 소리를 질러요. 또 한번은 시골 초등학교에 갔는데 고물 자전거만 타 본 아이들이 내 자전거를 보고 부러워 하는데 부끄럽더만. 그래서 한명씩 타보라고 했는데 하루 종일 걸리더라고. 그래서 하루 종일 옆에 쭈그리고 앉아 있었지.” 그는 이 대목에서 서은영기자가 노트북 자판을 두드리는 것을 흘끔 보더니 “허! 참 컴퓨터를 잘 하는구만”이라고 감탄했다. 그런데 그 표정이 그가 말한 촌로(村老)의 모습이었다. ▦우= 다음 작품은 어떤 건가요. 주제라도 좀 말씀해주시죠. “가을에 써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벌써 가을이야. 머리 속에 뿌연 것이 있는데 그게 일단 선명해져야 겠어요. 소재나 주제 조차 뿌옇기만 해요. 차차 선명해 지겠지. 그러면 쓸 거요.” ▦우= 신문사 생각 나실 때는 없으세요. “얼마 전에 소파에 누워서 뉴스를 보다가 홍대 앞에서 납치ㆍ살인 사건 난 걸 봤어요. ‘젊은 기자들 죽어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 난 이제 그걸 안 해도 되니 좀 낫지.” 취재를 마치고 일어서다가 무슨 말 끝에 “왜, 취재를 두 명이 왔느냐”는 말이 나왔다. 그래서 내가 “서은영기자가 김훈이라는 작가를 혼자 취재하기가 무섭다고 해서 함께 왔노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그는 서은영기자에게 농반진반(弄半眞半)으로 일갈(一喝) 했다. “어떻게 견습 갓 떨어진 기자가 부장을 끌고 다녀. 나 평기자 때는 일년에 부장 얼굴 두세번 밖에 못 봤어. 야단을 맞아도 차장한테 맞았었다고.” 당황한 서은영기자가 얼버무렸다. “저 그게 아니라, 부장께서도 김선생님을 뵙고 싶다고 하셔서…” 들었지? 서은영아. 네가 존경하는 김훈 작가가 부장 잘 모시랍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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