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과학기술을 붓삼아… 전세계와 소통한 '인문학적 예술가'

■ '굿모닝 미스터 오웰' 30년… 다시보는 백남준

음악·미술 등 장르초월 퍼포먼스… 전세계서 2500만명이나 시청

예술로 세상 연결 가능성 입증

휴머나이즈드 테크놀로지 주장

단순한 '비디오아트' 넘어 21세기 지식정보화 사회 예측

경기도 용인 '백남준아트센터'에서 17일 개막핸 '굿모닝 미스터 오웰 2014'에서는 1984년 전파를 탄 원작을 직접 만날 수 있다.
/사진제공=백남준아트센터 ⓒ백남준재단 Nam Jun Paik Estate

30년 전인 1984년 1월 1일. 현대예술가 백남준(1932~2006)은 뉴욕·파리·베를린과 서울을 위성 생중계로 실시간 연결하는 유사 이래 첫 도전을 감행했다. 정오 뉴욕의 WNET 방송국과 오후 6시의 파리 퐁피두센터를 연결했고, 다음 날 새벽 2시이던 서울 등 세계 각 도시의 텔레비전에서는 '지금껏 본 적 없는 볼거리'가 펼쳐졌다. 퐁피두센터의 전시장에서는 독일의 전위예술가 요셉 보이스가 딸과 함께 퍼포먼스를 펼쳤고, 뉴욕에서 미국의 현대음악가 존 케이지가 그들의 공연을 위해 피아노를 연주했다. 장르를 초월한 100명의 예술가가 음악,미술,퍼포먼스,패션쇼,코미디를 선보였다. '바보상자' 텔레비전이 창조적 문화수단으로 재탄생하던 순간이었다.

백남준의 대표작인 위성 텔레비전 쇼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다. 조지 오웰은 1949년 발표한 소설 '1984'에서 원격 통신과 매스미디어를 이용한 감시·통제가 일상이 된 암울한 미래를 그렸다. 1984년의 미래는 정보 독점의 권력인 '빅브라더'가 인류를 지배할 것이라는 비관적 예언이었다. 백남준은 이런 오웰에 대해 "절반만 맞았다"고 반박했다. 그리하여 1984년의 미래에도 '우리는 여전히 안녕하다'는 뜻의 제목으로, 오웰이 우려하던 원격 통신의 긍정적 힘을 빌어 작품을 기획했다. 안방까지 현대예술을 배달한 이 방송을 전세계 2,500만명(재방송 포함)이 시청했다. 백남준은 예술을 통해 세상을 묶을 수 있다는 새로운 가능성을 입증한 최초의 예술가였다.

백남준이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선보인 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오는 20일은 고 백남준의 82번째 생일이다. 백남준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예술가이자 가장 강력한 문화 브랜드임에도 정작 우리 상당수는 그를 '비디오아트의 창시자' 정도로만 단편적으로 알고 있다. 백남준은 난해한 아방가르드 예술과 피상적인 대중예술을 뒤섞고, 음악과 미술, 예술과 기술을 결합함으로써 문화적 편견을 극복하고 전지구적 소통을 중시한 '인문학적 예술가'였다.


1932년 7월 20일 서울, 백남준은 육의전 포목상 집안으로 방직공장을 운영하던 부친의 3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서 피아노를 배웠고 일본에서 미술사와 음악사를 공부해 1956년 독일로 갔고 음악적 스승 존 케이지를 만났다. 당시 전후 유럽은 기존 질서에 대한 회의와 반성이 깊었기에 새로운 예술을 추구했고 백남준은 그 최전선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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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케이지에게 보내는 경의'(1959년)에서는 피아노를 부수는 퍼포먼스를 선보여 '아시아에서 온 문화테러리스트'라는 별명을 얻었다.

예술과 더불어 문화, 인종의 다양성을 주장하던 백남준은 이후 뉴욕으로 거점을 옮겼다. 1965년에 휴대용 비디오카메라로 당시 뉴욕을 처음 방문한 교황 요한 바오로 6세를 촬영해 소공연장에서 방영한 것이 최초의 비디오아트로 미술사에 기록돼 있다. 첼리스트 샬롯 무어먼을 누드상태로 연주 퍼포먼스를 하게 했다가 뉴욕 경찰에 체포되는 사건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켜 예술적 누드를 처벌할 수 없게끔 법개정까지 이끌었다.

백남준은 1993년에 독일관 대표작가로 베니스비엔날레에 초청돼 북방 유라시아의 유목문화를 배경으로 한 '일렉트로닉 수퍼하이웨이'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을 거머쥐며 20세기 최고 작가임을 공인 받았다. 그는 1995년 광주비엔날레 첫 회 특별전에 기여했고, 그 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 설치에 결정적 역할을 했다. 2000년에는 뉴욕 구겐하임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렸고 2006년에 별세했다.

백남준 관련 2권의 저서를 출간한 이용우 광주비엔날레재단 대표는 "백남준은 예술을 인문학적 사고로 바라봤으며 휴머나이즈드 테크놀로지(인간화 된 과학기술)를 주장하며 과학기술을 인문학적 관점으로 새롭게 창안해 붓처럼 활용했다"며 "오늘날의 미디어를 통해 인류가 정보·소통·개방을 누린다는 점에서 백남준의 1984년 예측은 탁월했다"고 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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