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 개각과 책임장관


중국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에게 신하가 물었다.

"천하를 얻은 비결이 무엇입니까?"


유방이 답했다.

"계획을 짜는 데에는 나는 장량(張良)을 따르지 못한다. 나라를 진정시키고 민심을 수습하는 데에서는 나는 소하를 따르지 못한다. 또 100만의 대군을 거느리고 백전백승하는 데에서는 한신(韓信)만 못하다. 나는 이 세 인물이 각자의 재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도록 했다. 이것이 내가 천하를 잡을 수 있었던 이유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해 정부 출범 당시 첫 국무총리와 부처 장관을 임명하면서 '책임총리'와 '책임장관'을 유독 강조했다. 총리와 장관이 국민들이 그들에게 부여한 권한에 걸맞은 사명감과 책임의식을 갖고 국정을 맡아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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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국민들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파악·초동대처·사고수습 등 일련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과연 총리와 장관들이 책임감을 갖고 강단 있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를 보였는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부처 간에 자기 업무가 아니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볼썽사나운 모습에 실망을 넘어 함께 분노했다. 그 어디에도 장량·소하·한신은 없었다.

박 대통령이 실종자 가족들이 모여 있는 진도체육관을 찾아 구조현황 스크린을 설치할 것을 지시하자 부리나케 스크린을 마련했고 재난구조 체계를 일원화해야 한다고 언급하자 국무총리가 총괄하는 범부처사고대책본부를 꾸렸다. 실종자 가족들이 얼마나 답답했으면 박 대통령에게 "전화번호를 드릴 테니 지시한 내용들이 잘 지켜지고 있는지 확인해달라"고 울부짖었겠는가.

국민들은 '대통령만 있고 총리와 장관은 없는' 현실에 자괴감을 느꼈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왜 장관들이 '무기력증'에 빠졌는지 곰곰이 되짚어봐야 한다. 대통령과 청와대가 모든 정책방향과 세부사항을 지시하고 장관들은 수동적으로 지시를 이행하는 시스템으로는 책임장관 제도를 실현할 수 없다.

장관들이 책임의식을 가지고 주도적으로 정책을 집행하려면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먼저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 정홍원 국무총리가 지난 27일 사의를 표명하면서 전면적인 개각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상의 '2기 내각'에는 장량과 소하·한신이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박 대통령이 장관들을 믿고 책임과 권한을 대거 이양해야 한다.


서정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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