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BO펀드 원금보장연말 회사채만기물량 상환자금 마련에 투자자 불신해소
정부가 투신사 보유 7조5,902억원 규모의 CBO 후순위채 손실분담 주체를 정관이나 약관에 아예 규정하기로 한 것은 투자자와의 분쟁을 근원적으로 차단하자는 포석에 따른 것이다.
이는 또 "앞으로 정부의 금융정책은 금융회사 중심에서 투자자 중심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밝힌 이근영 금융감독위원장의 최근 발언과 비슷한 취지에서 이해될 수 있다.
특히 정부는 이번 조치로 부실자산을 기초로 발행되는 간접투자상품, 투기채 등급 편입 펀드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신이 반감되는 효과를 기대하고 있다.
또 시중자금이 투신권으로 유입돼 연말까지 집중 도래할 회사채 만기물량을 상환할 수 있는 자금을 확보하는 구체적인 효과까지 노리고 있다.
하지만 증권사와 은행 등 판매사ㆍ투신운용사 등 손실 책임주체들은 "투신사를 통한 간접투자의 핵심은 '수익자 책임 원칙'인데 이번 조치는 이를 정면으로 위반하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이들은 "투신사 CBO 펀드란 부실을 연기시키기 위한 목적이었는데 손실부담까지 판매사 등에 넘긴다는 것은 연기했던 부실의 해결을 또 다시 연기하기 위한 일시방편으로 볼 수밖에 없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 정부 입장
간접투자에 따른 손실의 책임 분담을 명확히 하자는 게 금융당국의 명분이다.
정부로 하여금 손실 분담 원칙을 강구하게 만든 배경은 두 가지.
최근 대우채 처리 문제를 둘러싼 투신사와 투자자간 분쟁이 다발적으로 터져나오고 있고 법원의 판결도 비슷한 사안에 대해 엇갈리고 있기 때문이다. 차제에 책임주체를 명문화하자는 게 금융당국의 기본 입장이다.
투신사 CBO 후순위채 책임주체를 아예 펀드 약관이나 CBO 후순위채를 발행한 특수목적회사(SPC) 정관에 명문화하는 제도적 장치를 통해 혼선을 방지하자는 것이다.
또 투자위험도가 큰 CBO 후순위채가 포함된 펀드에 대한 투자를 꺼려왔던 투자자들에게 높은 투자 메리트를 제공해 시중자금을 끌어들이고 만기가 돌아오는 CBO 후순위채 상환자금을 마련할 수 있는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투신사 총 CBO 잔액은 지난해 말 현재 선순위채 10조2,083억원, 후순위채 7조5,902억원 등 총 17조7,985억원이다.
이중 선순위채의 경우 투자적격채권이어서 부도가능성이 작아 투자 리스크가 거의 없다. 반면 후순위채는 투기등급채권을 모은데다 선순위채권에 우선권 권리까지 내준 채권이어서 그간 기초자산이 되는 일부채권이 부도나면 파장이 우려돼왔다.
이 와중에 '하이리스크ㆍ하이리턴' 투자에 대한 책임은 전적으로 고객 책임'이라는 논리를 내세워온 판매사나 운용사 대(對) 투자자간 분쟁이 예상돼왔다.
정부가 이번에 투신사 CBO 후순위채 책임소재를 못박기로 한 것은 이 같은 가능성에 쐐기를 박자는 포석으로 이해된다.
◆ 금융권 반발
투신사 CBO 발행 당시 기초자산 중 일부채권의 부도에 대비, 안전장치로 크레디트 라인, 풋백, 캐쉬 리저브(상환보장 예치금) 등 안전장치에 대한 책임을 진 상황에 추가적인 책임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게 반발의 핵심이다.
특히 투신사들은 펀드 직판이 허용돼 있지 않은 상황에 판매사인 증권사와 은행이 CBO 후순위채가 포함돼 새로 설정되는 펀드를 팔아주겠느냐며 재고를 요청하고 있다.
한 투신사 임원은 "기왕에 설정된 펀드는 문제가 없겠지만 펀드 만기가 돌아와 새로 설정된 펀드는 판매사가 책임회피를 들어 판매하려 들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취지는 이해하지만 시장현실은 반영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 문제점
투신권 상품에 대한 신뢰를 높이고 투자자보호 원칙에 충실하자는 금융당국의 기본 방침에는 금융회사들도 수긍하고 있다.
문제는 손실부담의 폭과 한계. 손실이 추가로 발생할 때마다 투신사 등이 책임진다면 투자자들의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를 초래하고 결국 새로운 부실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크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투신사 CBO 펀드를 판매했던 은행의 한 관계자는 "투자자 보호라는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자칫 '투자 책임은 투자자 자신이 진다'는 원칙이 깨지고 시장 전체의 질서가 혼란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손실 발생시 책임 분담을 피하기 위해 신규 펀드 판매를 기피하는 부작용도 우려된다.
정승량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