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국가의 영’ 엄정 확립부터(김대중 당선자의 최우선과제)

◎경제 생사기로… 강력한 리더십 발휘돼야/실정책임 가려 되풀이 안되게 쐐기박도록「여우의 교활함과 사자의 용맹함.」 마키아밸리는 그의 저서 「군주론」에서 지도자가 갖추어야 할 덕목을 이렇게 빗대어 표현했다. 민초와의 약속을 지키는 우직함과 성실이 선행돼야 함은 물론이다. 하지만 이를 국가 이익과 조화시키는 유연성이 더 중요하며 적기에 용단을 내릴 수 있는 결단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얘기다. 최근 국내 경제상황은 이같은 강인한 지도력을 절실히 요구하고 있다. 나라살림은 결딴나기 직전이고 그동안 국정을 농단해온 책임자들은 나몰라라 나자빠져 있다. 국민들은 하나같이 터져나오는 울분을 삼키며 비탄에 빠져 있고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불신감이 곳곳에 넘쳐난다. 국가 기강은 흐트러져 수습의 실마리를 잃은 지 오래며, 음습한 뒷골목에서는 오늘도 갖가지 비행과 불법이 스스럼없이 자행되고 있다. 하지만 하루빨리 나라를 추슬러야 할 때다. 국가의 영을 세우고 법체계를 엄정히 바로잡아 나가야 한다. 서슬퍼런 IMF통치 아래 「우리는 다시 일어설 수 있다」는 자긍심을 되찾아야 하며 새로운 희망의 불씨를 지펴야 한다. 이를 위해 무엇보다 강력한 통치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은 국가 비상사태다. 경제가 일어서느냐, 주저앉느냐 하는 기로에 서서 통치력의 완벽함을 논하는데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된다. 김대중대통령당선자에게 공약이행에 앞서 먼저 통치권 확립에 나서라고 주문하는 까닭도 바로 이같은 상황의 절박성에서 비롯한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책임을 분명히 가리고 같은 실수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쐐기를 박아야 한다. 「나는 잘못한 게 없다」는 무책임, 무소신론을 일소하고 공생공사의 일체감을 확보해야 한다는 얘기다. 국가 운영의 기틀을 다시 세우는 일도 시급하다. 그간의 잘못된 정책집행 과정에서 허물어진 정부의 명령체계를 되살려야 한다. 지난 2일 발표된 9개 종금사 업무정지명령은 우리 정부의 영이 얼마나 엉망진창 무너져 내렸는지를 대표하는 사례다. 전날까지만 해도 종금사에 콜자금을 지원해주라고 독려하던 재정경제원은 다음날 곧장 9개 종금사에 업무정지명령을 내리고 채권채무를 동결했다. 정부 지시로 콜자금을 지원해준 다른 금융기관들이 돈을 찾아갈 수 없게 된 것은 당연한 수순. 이후 금융권에는 정부지시를 도무지 믿지 못하겠다는 불신감이 확산됐고 재경원의 어떠한 명령도 통하지 않는 무정부상태가 한동안 지속됐다. 금융기관을 지휘, 통솔해야 할 재경원이 스스로 권위와 위엄을 땅에 떨어뜨려버린 결과나 다름없다. 공무원들의 보신주의도 사태악화에 한 몫을 했다. 드러난 결과가 참담해도 잘못을 시인하고 책임지는 당국자는 아무도 없다. 이번 고비만 넘기면 된다는 치졸한 변명이 난무할 뿐 당당하게 잘잘못을 평가받고자 나서는 공직자는 찾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한일합방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할복자살한 충정공 민영환의 존재를 새삼 아쉬워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국난에 가까운 위기상황에서 정작 수습할 당국자들이 지리멸렬인 상태는 보통 문제가 아니다. 강력한 리더십의 회복과 이를 바탕으로 국가 명령체계의 엄정한 확립이 시급한 이유다. 리더십은 영도력(Headship)과는 엄연히 구분된다. 영도력은 독재자가 물리적 힘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는 것인 반면 리더십은 신의와 존경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상호추종의 관계다. 이제 영도력은 더이상 필요치 않다. 진정한 리더십을 통해 국가부흥의 기틀을 세워야 할 때다. 정치가의 위대함은 어떻게 선출과정에서 승리했느냐가 아니라 당선후 지도자로서의 역할을 얼마나 효율적으로 수행했느냐를 기준으로 평가된다. 국민들이 새 정부에 거는 기대는 희망적이면서도 차가울만큼 냉혹하다.<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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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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