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동안 굳게 걸려 있던 일본 문화에 대한 빗장이 열린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7일 일본을 공식 방문해 일본문화 개방이라는 한일 관계에 한 획을 긋는 중대결단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金대통령의 결단은 정치·사회·경제·문화 등 모든 분야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올 것임이 분명하다.
오는 25일에는 서울시와 도쿄(東京)도 공동 주최로 서울서 개최되는 음악제에서 일본 가요곡이 광복 이후 공식자리에서는 처음으로 불려진다. 아사히(朝日) 신문은 이와 관련, 재일 한국인 가수 전월선(田月仙)씨가 「새벽의 노래」 「하미치도리」(물떼새) 「아카돈보」(고추잠자리) 등 일본 가요를 일본말로 노래할 것이라고 2일 보도했다.
일본문화 개방은 일본 문화산업이 한국에 진출하는 것을 의미한다. 특히 가요·영상·애니메이션·잡지·오락산업 등 일본 대중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산업의 첨병들이 몰려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 내에서는 일본 문화산업이 진출하면 곧 한국 문화산업을 퇴출시키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은 편이다. 반면 우리 문화사업을 양질이면서도 부가가치가 높게 탈바꿈시킬 새로운 자극제가 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게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한국과 일본의 관계는 「가깝고도 먼 이웃」이라는 표현대로 서로 경원시해왔던 게 사실이다. 물론 한일관계의 저변에는 일본의 36년간 한반도 지배 등 역사적인 요인과 함께 경제력의 차이에서 기인하는 불균형관계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왔다.
그러나 21세기를 목전에 둔 지금 한일관계는 새로운 변화가 필요한 전환점에 놓여 있다. 특히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 신탁통치」를 받고 있는 한국경제와 침몰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일본경제가 다음 세기에 펼쳐질 무한경쟁의 세계를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양국간 새로운 동반자관계의 정립이 필요하다는 인식이 넓어지고 있는 게 현재의 상황이다.
이같은 동반자 관계는 양국의 문화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서부터 출발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양국의 문화적인 유대가 바탕이 된 경제·정치의 협력관계를 모색하는 것이 양국관계 정립의 정도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우리가 일본 문화에서 무엇을 배우고 얻을 것이며 우리는 또 일본에 무엇을 전달하고 보여줄 것인가 하는 점이다.
먹고 마시고 노는 것은 물론, 모든 인간행위가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문화산업으로 등장했다. 현재로서는 이같은 부(富)를 산출하는 문화산업에 대한 접근이라는 면에서는 일본이 우리보다 뛰어나다. 문화를 상품화하는 데는 일본이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앞서 있는 것이다.
일본은 전통적인 동네행사를 자신들이 「마쓰리」라고 부르는 축제로 발전시켜 볼거리와 먹거리를 제공한다. 또 다양한 테마 파크를 만들어 놀고 쉴 수 있는 공간도 마련하고 있다. 최남단 오키나와(沖繩)에서 북쪽 끝의 홋카이도(北海道)에 이르기까지 전국 어디를 가나 그 지역 특유의 볼거리와 먹거리·할거리가 있다.
지역문화 행사는 곧 지역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지역사회를 발전시켜간다. 일본의 이같은 문화산업 육성정책은 우리가 배워야 할 사안이다.
우리 땅에 상륙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일본의 퇴폐문화다. 한 예로 한국과 일본은 성(性)에 대한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그들의 성문화 중 일부는 우리에게 거부감을 준다. 또한 「더욱 자극적」(more exciting)인 것을 추구하는 일본 대중문화의 속성상 우리 사회에서 수용될 수 없는 폭력적이고 비윤리적인 분야는 적절히 걸려져야 한다.
이미 일본의 대중문화산업은 현재 우리 사회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학생들이 즐기는 게임기와 만화, 젊은 여성들이 들고 다니는 여성지는 물론이고 집에서는 위성을 통해 일본 씨름인 스모와 일본 야구, 마쓰리를 접한다.
특히 청소년들은 일본 대중문화에 친밀감을 표시할 정도로 깊이 몰입해 있다. 한 조사에 의하면 청소년 10명 중 9명 이상이 일본 대중문화를 접해본 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들 청소년들 대부분은 일본문화를 접하기는 하지만 개방이 가져다줄 충격과 피해에 대해 걱정하고 있다. 청소년들뿐만이 아니다. 한국민 대부분이 마찬가지로 우려감을 느끼고 있다.
가장 많은 피해를 입을 분야는 캐릭터산업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캐릭터 상품 중에서도 닌텐도와 세가·마쓰시다·소니 등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알 수 있는 일본기업들로 대표되는 비디오게임 산업은 한국시장에 무섭게 몰아닥
칠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고·최대라는 명성을 얻고 있는 일본 만화산업, 독자적인 기반을 구축하고 있는 영화산업, 다양성과 특징에 있어서는 세계적인 위치를 인정받는 잡지산업 등 일본이 경쟁력을 갖고 있는 문화산업은 우리의 개방만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문화개방이 우리에게 부의 유출과 문화산업 위축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게 많은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리의 대중가요중 트로트는 일본의 엔카에 뿌리를 두고 있다. 대중가수 한명이 일본시장 진출에 성공한다면 국부의 유출이 아니라 유입이 된다. 이미 일부 가수는 일본에서도 유명인이 돼 있다.
또한 캐릭터·만화·영화 등 우리보다 앞선 일본 문화산업과 공존할 수 있는 한국 문화산업의 육성에 힘쓴다면 우리의 문화산업도 한 단계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무조건 무시해서는 안된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한일 문화개방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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