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그룹이 현대엘리베이터와 현대상선, 현대아산 등을 계열사로 편입해 경영정상화를 선언하고 나선 것은 지분경쟁이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다.
특히 정상영 명예회장은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사후 부실경영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경영진이 없다는데 강한 불만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계열편입 작업이 마무리되면 경영진 교체를 포함한 경영정상화에 손을 댈 것으로 전망된다.
부실오명을 덮어쓰고 있는 현대그룹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는 지분경쟁을 통해 현대그룹을 KCC그룹의 계열사로 편입한 뒤 경영정상화 수순을 밟는 것이 올바른 방안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KCC그룹 실질적 지주회사로 부상=KCC그룹은 이날 정상영 명예회장이 신한BNP파리바 사모펀드를 단독으로 결성했으며 지분경쟁에서 승리했다고 선언했다. KCC그룹은 KCC법인(8.65%)과 신한BNP파리바 사모펀드(12.82%), 범현대가 지분을 합해 모두 44.39%의 지분을 확보해 최대주주가 됐다.
KCC그룹은 조만간 계열사 지주회사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것으로 전망된다. 정종순 부회장은 “우리는 현정은 회장을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으로 인정하고 있을 뿐”이라며 “도덕성과 전문성을 두루 갖춘 전문경영인을 현대그룹의 새로운 회장으로 영입하는 방안을 차후 강구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회장선임을 둘러싼 KCC그룹과 현대그룹간 신경전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
KCC그룹은 이미 계열사 편입을 기정사실화하고 있다. KCC 고위관계자는 “현대그룹을 계열사로 편입하면 자산규모 5조원을 넘어서 출자총액제한에 걸리는 등 이후 발생할 수 있는 문제점을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으며, 법률적인 작업도 진행하고 있다”고 말해 지분매입과정에서 이미 계열사 편입을 고려하고 있었음을 시사했다.
이에 따라 자산규모 2조6,700억원인 KCC그룹의 재계서열도 현대그룹(자산 10조1,600억원, 서열 19위)의 계열편입으로 37위에서 18위로 급상승하게 된다.
일부에서는 KCC가 여론과 국민감정을 감안해 내년 3월 현대엘리베이터 주총까지는 별다른 액션을 취하지 않겠지만 이미 현대그룹 계열사 경영진에 대한 살생부를 작성해 놓았을 것이라는 분석마저 나오고 있다.
◇현대그룹 관리 방안은=KCC그룹은 현대계열사중 현대상선과 현대아산의 부실을 청산하는데 초점을 맞출 것으로 보인다. 이는 신한BNP파리바 사모펀드가 현대엘리베이터뿐 아니라 현대상선 지분도 같이 사들인 점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KCC그룹은 현대상선 지분율을 6.9%로 크게 늘렸는데 이는 현대엘리베이터가 현대상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지분 15.2%에 이어 2대주주의 자리다. 현정은 회장이 가지고 있는 4.9%를 오히려 웃돈다.
KCC 고위관계자는 “정명예회장이 현대상선 지분을 사들인 것은 현대상선이 현대엘리베이터에 이어 제2의 적대적 기업인수합병(M&A)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에 따른 것”이라며 “현대상선 정상화없이 현대그룹의 재도약은 기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대북사업으로 부실규모가 커진 현대아산에 대한 경영권 개입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종순 부회장은 “기업이 이익을 못내는 것은 기업으로서의 가치를 상실한 것이며 국민경제에도 큰 부담이 되는 만큼 손질이 불가피하다”고 밝혀 현대아산의 경영진 교체와 대북사업의 궤도수정이 뒤따를 것임을 우회적으로 내비쳤다./서정명기자
■ 정종순 부회장 일문일답
KCC 정종순 부회장은 14일 “정상영 명예회장을 위시한 `범현대가`가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을 50% 이상 확보했다”며 “앞으로 현대그룹의 경영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 부회장은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하지 않는다는 게 기본입장”이라며 “대상선이 진행해온 대북사업도 같은 관점에서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정 부회장과의 일문일답.
-현대그룹이 KCC로 계열편입 됐나.
▲일단 정황상 그렇게 볼 수 있으나 계열편입 여부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판단하는 것이다. 공정위에서 기업결합 신고요청이 오면 법에 따라 진행할 것이다.
-신한BNP파리바투신운용이 매입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은 누가 주체인가.
▲정상영 명예회장이 단독으로 매입한 것이다. 사재로 매입한 것으로 알고 있다.
-범현대가가 확보한 현대엘리베이터 지분은 정확히 얼마인가.
▲공시를 통해 밝히겠지만 정 명예회장과 KCC, KCC 계열사 등이 매입한 지분은44.39%이며 현대증권 등 우호적 현대계열사까지 합치면 50%가 넘는다.
-앞으로 현대그룹을 어떻게 경영할 것인가.
▲구체적인 것은 논의해봐야 한다. 다만 수익이 나지 않는 사업은 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원칙이다. 현대상선의 대북사업이 이런 관점에서 재고할 것이다.
■ 현대그룹 반응
현대그룹은 정상영 KCC명예회장의 그룹경영권 장악 표명에 대해 도덕적으로 문제가 크다고 반발하고 나섰다. 현대는 이에 따라 우선 친인척 주주들에게 도덕적인 부분을 호소하는 한편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법적 대응방안(의결권 제한 소송 등)도 적극 검토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 측은 KCC가 경영권 장악의사를 표명한 것이 하필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 사후 불과 100일이 갓 지난 시점이란 점에서 마치 시기만 기다린 듯한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현대 관계자는 “KCC측이 지분 확보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현정은 현대엘리베이터 회장이 지난달 북한 평양에서 열린 류경 정주영 체육관 완공관련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방북했던 시점부터”라며 정 명예회장의 도덕성을 걸고 넘어졌다.
그는 KCC 측이 거론한 계열사의 대북사업 및 부실경영인에 대해서도 “현대상선은 이미 2001년부터 대북사업 관련 업무를 포기했다”며 “KCC측에서 문제삼는 전문경영인들도 사실상 경영에서 손을 뗀지 오래됐다”고 반박했다.
지금으로선 현대그룹이 지분구조상 KCC측을 뒤집기는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정 명예회장 측의 의결권 제한 가능성 여부 및 김영주 한국프랜지공업 명예회장의 설득 등 다양한 해결방법을 찾고 있다. /최인철기자
■ 대북사업 어떻게 되나
오는 18일 `금강산관광 5주년` 기념행사를 기획하는 등 의욕적으로 대북사업을 추진중인 현대아산으로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 격이다.
현대아산 관계자는 “당장은 KCC의 발표에 대해 뭐라 말할 수 없으며 현재 방북중인 김윤규 사장이 돌아오면 대책을 논의할 것” 이라면서도 “대북사업은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 고 정몽헌 현대그룹 회장의 유지”라며 범 정씨가문의 중의가 모아져야 할 것이란 점을 시사했다.
현대가 주변에선 이에 대해 KCC가 실제로 현대아산을 처분하려면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정몽준 현대중공업 고문 등과 협의를 거쳐야 할 것으로 지적, 정주영 명예회장의 유업인만큼 쉽게 포기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현재 현대아산은 현대상선이 40%의 지분으로 대주주이며 현대건설(19.8%), 현대중공업(9.95%), 현대자동차(5%), 현대미포조선(5%), 현대증권(4.5%), 현대상사(2.9%), 현대백화점(2.9%), 자사주(9.47%) 등 현대계열사들이 지분을 나눠 갖고 있다. 현대아산은 98년 11월 금강산관광을 시작한 이래 적자가 증가하면서 자본금 4,500억원이 완전잠식된 상태다. /최인철기자
<이혜진기자 hasi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