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조선의 위기와 회생 과정은 지극히 한국적이다. 배도 잘 만들고 장사도 잘했지만 그룹관련 부실로 워크아웃사로 전락한 게 그렇고 임직원이 똘똘 뭉쳐 우량회사로 거듭난 게 그렇다. 때문에 대우조선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경제가 나아갈 길을 상징하는 기업으로 손꼽힌다.
대우조선에 위기가 닥친 것은 지난 99년8월26일. 대우조선(당시 대우중공업) 임직원은 하늘이 무너지는 좌절감을 느꼈다. 대우그룹 계열사들이 하나둘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대우중공업도 이 위기를 빗겨갈 수 없었다.
대우자동차에서부터 시작된 위기는 대우그룹의 전계열사로 퍼져나갔다. 난마처럼 얽혀있는 지급보증과 계열사간 자금거래는 대우자동차의 위기를 걸러내지 못했다. 결국 대마(大馬) 대우그룹은 해체의 길을 걷게 되고, 대우중공업도 워크아웃기업으로 낙인 찍혔다.
그러나 위기는 대우조선을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대우조선의 전체 임직원들은 기존 선주들을 적극적으로 공략해 위기를 넘겼다.
대우조선의 높은 기술력을 믿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이다. 대우조선 임직원은 8월말의 워크아웃 졸업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워크아웃에서 탈피하면 명실상부하게 대우조선은 세계적인 조선기업으로 탈바꿈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의 회생은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이례적인 일로 평가된다. 거대한 덩치의 조선사가 되살아나는 사례는 거의 없었기 때문. 채권단의 출자전환 과같은 외부 도움이 있었지만 임직원의 와신상담(臥薪嘗膽)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풍랑을 만나 좌초위기에 몰렸던 거함이 쾌속정의 유연함과 순발력까지 함께 갖춘 새로운 선박으로 거듭난 셈이다.
◇선단식 경영이 안겨준 시련
지난 달 25일 대우조선은 마지막 홍역을 앓았다. 지난 99년 대우사태에 대한 책임을 묻는 대우그룹 분식회계와 관련한 1심재판 결과 사령탑인 신영균 사장이 3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은 것이다.
위기를 헤쳐온 선장을 잃은 아쉬움을 접고 대우조선은 7월27일 이사회를 열어 정성립 지원본부장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모셨다.
대우그룹으로의 일원으로 겪었던 마지막 아픔을 딛고 ‘대우’였기 때문에 겪을 수 밖에 없었던 업보를 사실상 정리한 순간이다.
익히 알려졌다시피 대우조선은 대기업의 선단식 경영이 가져올 수 있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보여줬다.
대우그룹이 워크아웃에 들어갈 당시 대우중공업의 조선부문은 영업이익을 내는 등 정상적인 경영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대우그룹의 일원으로 계열사에 대한 자금지원 등은 피해갈 수 없었고, 결국 계열사지원에 발목이 잡혀 공도동망(共倒同亡)하는 위기를 맞았던 것이다.
대우그룹의 다른 계열사와 마찬가지로 대우조선 역시 그런 업보에서 비껴갈 수는 없었다.
워크아웃에 들어가자 상황은 더욱 나빠졌다. 세계적인 조선경기 호황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순탄했던 국내외로부터 주문이 뚝 끊겼다. 재무구조 악화는 최대의 부담으로 작용했다. 공개입찰에 참여해도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기술력으로 위기를 넘긴 대우조선
그러나 죽기살기로 달려들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신념으로 대우조선 임직원들은 하나가 됐다. 공개입찰에서 수주가 사실상 불가능해지자 대우조선 임직원들은 개별선주를 중심으로 한 수주전략을 짰다.
대우조선은 자타가 인정하는 기술력을 갖고 있던 기업. 그 동안 거래해왔던 선주들과의 신뢰를 바탕으로 수주공세를 폈다.
그 결과 지난 해에는 상선 51척과 플랜트선 7척, 특수선 6척 등 모두 64척을 주문받았다.
35억6,400만달러에 달하는 규모였다. 일감이 다시 확보되자 직원들은 기력을 되찾았다.
대우조선은 회사형편이 벼랑으로 몰릴 정도로 어려웠지만 단 한명의 직원도 해고하지 않았다. 일감이 다시 확보되면서 회사가 정상화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대우조선의 회생계획도 차질없이 진행됐다. 99년11월26일 조선과 기계사업부문의 분할이 결정된 후 작년 10월23일 분할등기가 완료돼 명실상부하게 대우조선이라는 별도법인으로 다시 태어났다.
그 해 12월14일 채권단의 출자전환이 이뤄져 산업은행이 대주주가 됐다. 그리고 지난 2월2일 증권거래소에서 거래가 중단됐던 주식은 대우조선의 이름으로 다시 재개돼 지금은 재상장가격보다 3배 가까이 올라 있다.
◇새로운 비젼의 시대
대우조선은 올 초 대졸신입사원 100여명을 뽑았다. 수주가 늘어나 정상화에 박차를 가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돼 비전을 같이할 새로운 식구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올 상반기 영업실적도 매우 좋다. 올 상반기에 회사 내부적으로 정한 1조3,771억원보다 7.8%가 많은 1조4,788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영업이익은 1,815억원에 달했고 순이익도 1,044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실적이 호전돼 벌어들인 돈으로 차입금 상환도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다. 올 들어 이미 2,324억원을 상환했고 추가로 500억원을 더 상환할 계획이다.
대우조선 임직원들은 자신감에 차있다. 최근 수주가 늘고 있는 고부가가치 선종인 LNG선과 초대형 유조선 등이 올 4ㆍ4분기부터 매출에 반영되면 순이익도 급증할 것으로 기대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워크아웃 졸업도 준비중이다.
이달 초 워크아웃 졸업을 신청하고 채권단과 협의를 거치면 이달 말에는 워크아웃에서 탈피해 진정한 ‘홀로서기’가 현실로 이뤄진다.
침몰위기에 몰렸던 대우조선, 임직원이 뭉쳐 일로매진하면 이루지 못할 것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 대표적인 사례다.
대우조선은 이제 꺼져가는 엔진을 수리해 5대양을 누비는 쾌속항진의 깃발을 높이 올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