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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노삼성차의 독기가 서서히 힘을 발휘하고 있다. 한때는 현대·기아차에 이어 내수시장 점유율 '빅3'로 명성을 날렸지만, 2012년에 쌍용차에 밀려 5위라는 수모를 당하면서 르노삼성차의 눈빛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적어도 '쌍용차에 밀리면 안된다'는 분위기가 강했다. 이 때문인지 르노삼성차는 작년 판매누계 6만대를 기록하면서 쌍용차를 따돌리고 4위로 올라섰다. 후발업계의 순위를 따지는 것이 무모해 보이지만, 르노삼성차는 작년 실적을 바탕으로 올해는 한국GM(쉐보레)를 따라잡을 기세다. 한국GM은 작년 판매누계가 약 13만여대로 르노삼성차의 2배가 넘는다.
17일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찾은 부산 강서구 신호동에 위치한 르노삼성차 부산 본사공장은 '한국GM 추월'이라는 무언의 의지가 곳곳에서 감지됐다. 각 생산라인의 근로자만 봐도 예전에는 보기 드문 작업열기가 물씬 풍겼다. 밀려드는 차량 주문을 맞추기 위해 쉴새 없이 손을 놀리면서도 불량률 제로(0)를 위해 한땀 한땀 심혈을 기울였다. 일부 라인은 잔업을 해야 할 정도로 물량이 쌓여 생산라인이 모처럼 활기를 되찾고 있다.
르노삼성차는 주력 차종인 QM5 2.0 가솔린모델과 다운사이징 모델인 SM5 TCE를 내세워 올해 더 큰 인기몰이에 나설 방침이다. 이 두 차종은 지난해 르노삼성차가 3년 만에 흑자전환을 이루게 한 주력 모델들이다.
르노삼성차 관계자는 "올해도 두 모델을 중심으로 판매호조를 나타내며 전 라인에 활기를 불어넣고 있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자동차는 지난해 영업이익 445억, 당기 순이익 170억을 달성해 3년만에 흑자 전환을 이뤘다. 하지만 지난 3년은 글로벌경기 부진 여파로 누적적자만 3,000억원에 달할 정도로 위기를 맞았었다. 800여명의 직원들이 희망퇴직으로 회사를 떠났다.
이 때문에 쏟아지는 물량으로 분주하지만 들뜬 분위기는 감지할 수 없었다. 오히려 한번 찾아온 도약의 불씨를 어떻게 살려야 할 지에 대한 고민과 긴장감이 묻어 났다. 르노삼성차 김종혁 홍보팀 과장은 "전 직원들은 앞으로 2년 내 지난해 대비 최소 70%의 성장을 이끌어 내 내수 3위의 완성차 회사로 올라서겠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며 "직원들도 상당한 자신감을 되찾아 가고 있다"고 말했다.
르노삼성차의 장기 부활 노력이 점점 가시화되면서 협력 업체들도 반기는 분위기다. 르노삼성차 부품 협력업체들은 지난 2009년 수출액이 120억원에 불과했지만, 지난 해에는 3,890억원으로 30배 이상 증가했다. 특히 이달초 르노-닛산 얼라이언스의 곤 회장 방문을 계기로 올해는 작년 대비 부품 수출물량이 40% 이상 급증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면서 협력업체들의 기대감도 모처럼 부풀어 오르고 있다. 한 협력업체 사장은 "부산 지역을 포함한 200여개 협력업체들이 르노삼성차의 장기 발전 계획에 동참해 최고 품질의 부품을 만들자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달 초 방한했던 곤 회장은 르노 그룹이 집중하고 있는 아시아 공략의 전략 기지로서 르노삼성자동차의 역할을 강조하는 등 르노삼성의 비전에 대한 지원 의지를 밝힌 바 있다. 결과적으로 곤 회장의 방한이 르노삼성 임직원들과 협력업체들이 상호 신뢰를 다지는데 큰 영향을 끼친 셈이다. 이로 인해 직원들의 사기도 한껏 고조됐다는 평가다.
풀어야 할 숙제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르노삼성차가 부산공장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계획하고 있는 뉴 스타트 프로그램을 놓고 노사가 바라보는 시각차가 생긴 것이다. 뉴스타트 프로그램은 생산에 참여하지 않는 고직급자들의 전직 프로그램인데 회사는 노는 인력을 생산에 투입해 원가를 절감하면 경쟁력이 훨씬 높아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노조에서는 사실상 희망퇴직이라며 사측에 100% 신뢰를 주지 않고 있는 것이다.
'쌍용차만은 따라잡자'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어, 이 문제도 곧 해결될 것으로 보이지만 르노삼성차가 부활을 위한 마지막 관문 앞에 서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부산상의 관계자는 "르노삼성차가 도약의 불씨를 살릴 수 있도록 대승적 차원에서 노사 공동의 노력이 절실한 시점"이라며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