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뮤지컬의 바람이 그야말로 매섭다. 지난 2011년 기준으로 국내 뮤지컬 관객 수가 1,000만 명을 돌파했다. 2012 프로야구 시즌 관객수가 700만명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뮤지컬이 이제 국내 문화예술산업의 한 축으로 자리잡았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극은 600만명, 클래식 음악은 500만명, 무용은 100만명을 넘어섰다.
이에 더해 K팝, 한류 열풍에 힘입어 대한민국은 점차 문화강국으로 발돋움하고 있지만 공연장을 찾는 관객들은 여전히 경제적으로 적지 않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뮤지컬 '위키드'의 경우 VIP석이 14만원, A석이 6만원이다. 3~4명의 가족이 함께 본다면 적지 않은 부담이다. 클래식 공연은 훨씬 더하다. 11일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티켓가격이 VIP석은 45만원, A석이 27만원이다. 지난해 연세대 노천극장에서 공연했던 오페라 '라보엠'은 VIP석이 57만원. A석도 15만원이다.
◇티켓가격 비싼 이유는=각종 공연장을 찾는 관객 수가 크게 늘었으면서도 가격이 비싼 것은 제작비가 크게 올랐기 때문이다. 유명 해외 오케스트라나 뮤지컬 오리지널팀 내한공연의 경우 티켓가격은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국내 기획사에서 100명이 넘는 대규모 단원들의 이동 및 숙박비와 민감한 악기, 무대장치 등을 운반하는 데 필요한 특수차량 비용 등을 모두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뮤지컬 공연에 출연하는 아이돌 스타의 경우 기존 뮤지컬 배우에 비해 적게는 2배에서 많게는 7~8배의 출연료를 받는다. 스타 캐스팅 비용으로 많은 부담을 안고 있지만 스타를 내세우지 않으면 협찬도 붙지 않고 관객들도 공연장을 찾지 않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업계에서는 설명한다. 손상원 이다엔터테인먼트 대표는 "양적으로 공연시장이 확대되고 있는 것은 맞다"며 "그러나 공연의 공급과잉으로 마케팅 비용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공연업계에 따르면 제작되는 공연의 특성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총 제작비 중 배우ㆍ스태프의 인건비(40%)가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한다. 다음으로 무대설비(조명ㆍ음향ㆍ세트 제작 등ㆍ30%)와 홍보마케팅(15%), 대관료(15%)가 뒤를 이었다. 손 대표는 "뮤지컬과 연극은 다른 어떤 공연장르보다 관객을 가까이에서 만나기 때문에 무대설비나 제작환경이 변하면 금방 눈치챈다"며 "그래서 제작비를 낮출 수 없다"고 말했다. 여기에 뮤지컬은 평균 유료객석 점유율 '60%', 연극은 '40%'를 손익분기점으로 삼고 티켓가를 책정하기 때문에 가격이 오를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고 설명한다.
클래식이나 오페라의 경우는 관객층이 두텁지 않고 장기공연을 하기 힘들어 단기간 내에 최대한 수익을 내려다 보니 티켓가격은 자연스레 상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전언이다.
◇같은 공연, 다른 가격…이유는=티켓가격 차이를 벌리는 숨은 비밀은 '기업ㆍ지방자치단체의 협찬과 후원'이다. 협찬이 붙느냐 붙지 않느냐에 따라 티켓가격은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대규모 공연을 주최하는 기획사에서 기업이나 지자체 협찬에 목을 맬 수밖에 없는 이유다.
그러나 기업체 협찬은 오히려 티켓가격을 더 비싸게 만드는 요인이기도 하다. 한 공연기획사 관계자는 "대부분의 기업들이 자사 VIP에게 선물하기 위해 협찬 금액의 50~70%에 해당하는 부분을 티켓으로 회수해간다"며 "이때 VIP에게 생색을 내려고 티켓가격을 높게 표시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전했다. 수십만원 하는 공연 초대권이 이렇게 해서 탄생하는 것이다.
◇더 싸게, 더 좋은 공연을 볼 수는 없을까=서울시립교향악단의 경우 현재 3만원 이상의 티켓가격을 고집하고 있다. 이유는 최소 3만원 이상을 티켓가격으로 책정하지 않으면 싼 가격을 지불한 시민들이 공연장 질서를 흩뜨린다는 것이다. 그러나 비싼 가격 때문에 공연장을 찾지 못하는 시민들도 많다. 기업체나 지방정부가 순수 목적의 후원과 협찬을 해준다면 이들도 질 높은 공연을 얼마든지 싼 가격에 볼 수 있다.
스타 출연진의 높은 개런티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들도 많다. 손 대표는 "한시적인 '스타 캐스팅'으로 마케팅 효과를 보는 것은 대중문화의 장기적인 발전에 기여하지 못한다"며 "작품성이 뛰어난 공연과 신예 예술인을 무대에 세우기 위한 진정한 협찬이 이뤄져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또 "값싸고 좋은 공연이 시장에 많이 유통되려면 초기 투자시 큰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공연 기획사들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해 기업과 정부의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지방정부의 예산확보와 기업메세나 등 문화예술단체 지원금이 합리적으로 매칭되고 선심성 후원에 그치지 않아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