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고금관리법 개정·KIC설립 추진 "韓銀 입지 더 축소"
통화정책ㆍ외환운용기능등 재경부에 밀려 위축가능성
재정경제부의 국고금관리법 개정과 한국투자공사(KIC) 설립으로 한국은행의 고유업무가 점점 더 위축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일고 있다. 한은은 최근 디노미네이션 추진 논의에서도 재경부에 밀려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까지 받았던 터여서 더욱 위기의식에 빠진 분위기다. 지난 97년 금융감독원 설립으로 은행감독업무가 분리된 후 가뜩이나 영향력이 축소된 상황이어서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이 유명무실해지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내부에서 나오는 실정이다.
한은의 가장 큰 임무는 돈의 양과 흐름의 조절을 통한 물가안정. 그러나 국고금관리법 개정으로 재경부가 콜머니 등 단기시장에 개입할 경우 통화정책의 효율성이 떨어지거나 왜곡될 수 있다는 게 한은의 설명이다. 한은 노조는 "콜시장은 한국은행의 통화정책이 일차로 파급되는 경로"라며 "정부가 참여할 경우 시장교란으로 통화정책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은의 한 고위관계자는 "재정 부족분을 한국은행에서 차입하면 명목금리는 5%지만 정부가 한국은행에 예치해둔 금액을 제외한 차액에 대해서만 적용하기 때문에 실효금리는 2%대 정도로 콜금리(3.75%)보다 훨씬 낮다" 며 "싼 이자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콜시장에 개입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또 콜시장 자체가 하루짜리 은행간 거래가 대부분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장기적인 계획 아래 진행되는 재정을 이 시장에서 조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재경부가 추진 중인 KIC도 한은의 외화자산 보유, 운용기능을 축소시킬 전망이다. 재경부가 입법예고해놓은 대로 KIC 설립이 강행되면 유사시 회수가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외화자산으로 수익성을 추구한다는 발상 자체가 위험하다"며 "KIC의 모델이 되고 있는 싱가포르의 GIC는 전세계적으로 유일무이한 사례로 그렇게 좋은 거라면 왜 다른 선진국들도 따라하지 않겠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은행감독기능이 분리된 후 한은은 시중은행들로부터의 업무협조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자료에 시차가 생기는 등 효율성도 떨어졌다. 통계작성기능 역시 통계청과 겹치는 사례가 적지않다. 정책수립을 보조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연구활동도 큰 반향을 얻지 못하고 있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중앙은행으로서 본연의 기능을 수행하려면 그에 걸맞은 위상이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혜경기자 light@sed.co.kr
입력시간 : 2004-06-28 17: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