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손자병법과 세금

지난해 4월 미국을 방문한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그의 참모들에게 손자병법을 선물했다. 책은 저장성(浙江省)산 최고급 비단에 영문과 중국어로 새겨져 홍목과 호두나무로 만든 고급상자에 넣어져 전달됐다. 형식만 보면 극진한 예를 갖춘 것이지만 그 이면에는 ‘힘 자랑 말라’는 메시지가 담겨 있었다. 물리력을 앞세운 부시의 외교 안보전략을 은근히 비꼰 것이다. 손자병법은 ‘백번 싸워 백번 이기는 것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이 최선의 싸움기술(是故百戰百勝, 非善之善者也, 不戰而屈人之兵, 善之善者也)’이라 했다. 이라크전쟁을 보자. 미국은 이기기는 했지만 3,400명이 넘는 미군 사망자를 냈으며 부시의 지지도는 바닥을 헤매고 있다. 상처가 너무 큰 승리다. 그러니 손자의 가르침은 수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유효한 전략인 셈이다. 손자병법은 세금을 걷는 데도 통할 듯싶다. 참여정부 출범 이후 굵직굵직한 프로젝트가 줄지어 쏟아졌다. 지역균형발전, 양극화 해소와 복지선진국가, 성장동력 확충, 자주국방 등…. 강한 나라를 만들고 민족의 자존심을 세우며 고루 잘사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것이다. 정치적 호오(好惡)를 떠나 이런 세상이 오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또 그런 나라가 돼야 마땅하다. 문제는 돈이다. 그동안 나온 사업의 소요 재원을 살펴보면 입이 절로 벌어진다. 행정복합도시 43조9,000억원, 저출산ㆍ고령화대책 32조746억원, 농촌 개방대책 119조3,000억원, 장기임대주택 116만가구 88조원, 자주국방 전력 증강사업 628조원, ‘비전 2030’ 1,100조원. 수천억~수조원의 사업도 즐비하다. 이 많은 돈을 어디서 어떻게 댈 것인가. 지출구조합리화 등을 통한 예산 절약 정도로는 어림도 없는 일이니 빚을 내거나 세금을 더 걷어야 한다. 국채는 이미 위험 수위라 할 만큼 크게 늘어난데다 후손들에게 부담을 떠넘기는 것이어서 마음대로 동원하기 어렵다. 결국은 세금에 기대야 한다는 이야기다. 부자일수록 세금을 많이 내는 것은 상식이다. 앞으로도 그들에게 손을 더 벌릴 것은 뻔하다. 하지만 아무리 돈 많은 사람이라도 세금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많이 내고도 좋은 소리를 못 들으면 내기가 더욱 싫어진다. 지금 우리가 딱 이 모양이다. 정부는 돈 많은 사람들, 세금 많이 내는 사람들을 부아를 돋우고 맥 풀리게 만든다. 그들을 바라보는 시각에는 감정이, 심지어 적개심까지 실려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격차를 대기업의 경제력 집중 탓으로 몰아치는 등 국부 창출의 선봉장인 기업과 기업인들의 활동을 색안경을 끼고 보기 일쑤다. ‘2%의 투기꾼으로부터 98%의 국민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며 종합부동산세 대상자를 옥석 구분 없이 죄다 투기꾼 취급했다. 세 부담이 너무 과하니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에 대통령은 ‘세금이라고는 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의 알레르기 반응’이라고 일축했다. 정부가 공들였다는 프로젝트가 공허하게 들리는 가장 큰 이유는 ‘경제가 안 좋아 당장 살기도 힘든데 무슨 뜬구름 잡는 이야기냐’라는 것과 ‘무슨 돈이 있어서’로 요약된다. 이런 비아냥을 일소하기 위해서는 세금 많이 내는 사람들에 대한 인식부터 바꿔야 한다. 그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대신 나라살림을 잘 꾸려갈 수 있게 해주는 공로자로 대하며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다. ‘있는 사람은 계속 벌어 더 많이 세금을 내십시오. 없는 사람들은 그 사람들보다 더 빨리 더 많이 벌어 앞으로는 잘살고 세금도 내도록 하십시오’라고 말해보라. 그러면 막혔던 기업투자와 부자들의 소비가 풀려 경제가 살아나고 일자리와 소득 증가로 살림이 펴져 갈등과 분열이 해소되며 세금도 더 걷히는 선순환을 부를 것이다. 참여정부에 손자병법을 선물하고 싶다. 남의 말을 듣기는커녕 온통 ‘전투 모드’로 무장된 사람들이라 소용이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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