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연합의 보이콧과 친정부 시위대의 폭력 속에 막을 내린 이집트 개헌 국민투표는 역대 국민투표 사상 가장 높은 참가율을 기록했다고 정부는 발표했다.
이집트 내무부는 26일 최종 개표결과 3천 200만 등록 유권자 가운데 약 54%가 참가, 83%가 찬성표를 던졌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의 투표율 발표를 믿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부 여당은 투표율을 끌어올리기 위해 온갖 묘책을 구사했고 투표를 전후해 도처에서 블랙 코미디가 연출됐다.
집권 국민민주당 소속 일부 기업인들은 투표에 참가하는 유권자들에게 기발한 선물을 제시했다.
카이로 시내 쿠브리 알-쿱바의 한 자동차 부품상은 국민투표에 참가하는 모든 지역민들에게 비아그라 1알과 식사를 제공하겠다고 약속했다.
집권당 소속의 또다른 기업인은 모든 투표 참가자들에게 30파운드(6천원)를 주겠다고 제안했다.
수에즈 운하 인근 도시 이스마일리야의 한 토호는 투표 참가자들과 그 가족들에게 하루 짜리 패키지 여행상품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이들의 약속은 야당 기관지 알-와프드와 범아랍 신문 알-쿠드스 알-아라비에도 보도됐지만 투표 후 이들이 약속을 지켰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공보부 산하 여러 기관과 국영 TV 및 라디오 방송국이 입주해 있는 TV 빌딩에서도 투표 당일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졌다.
아나스 알-피키 공보장관은 산하 기관장들과 직원들에게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을 지지하고 투표 참가를 독려하는 행진에 참여하도록 지시했다. 지시를 어기는 사람들에겐 문책과 급료 삭감을 위협했다고 와프드지는 전했다.
TV 빌딩 외벽은 이집트 국기와 투표참가를 촉구하는 내용의 대형 현수막이 걸렸다. 건물 안에도 무바라크 대통령에게 충성을 다짐하는 문구의 플래카드로 도배를했다. 정부는 현수막과 플래카드 제작에만 10만파운드(2천만원)의 예산을 소비했다.
정부는 투표장으로 향하는 시민들을 위해 이날 하루 무료 버스를 제공하기도 했다. 시민들 사이에선 투표에 불참하면 20파운드의 벌금을 내야 한다는 농담까지 나돌았다.
야권은 정부가 발표한 투표율이 과장된 것이라며 실제 투표율은 5~10%에 불과할것이라고 꼬집었다.
투표를 이틀 앞두고 집권당 사무총장이며 상원 의장인 사프와트 알-샤리프는 TV토론에 참석, "이집트 역대 투표에서 투표 참가율이 17%를 넘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집권당은 2000년 총선 투표 참가율이 60%를 넘었다고 발표한 바 있다. 결국 집권당 사무총장이 과거의 투표율 발표가 거짓이었음을 시인한 셈이다.
(카이로=연합뉴스) 정광훈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