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목요일 아침에] 권의지계된 대한민국 교육

공교육 내실화·경쟁력 강화 내걸고 선행학습금지법 야심차게 내놨지만

손바닥 뒤집듯 바뀌는 교육정책에 학생·학부모 불신과 피로감 높아

정치적 중립 최우선 가치로 놓고 교육은 백년지대계 신뢰 쌓아야

임석훈 논설위원 shim@sed.co.kr


'백년지대계(百年之大計)', 백 년 이상의 먼 장래까지 내다보고 세우는 큰 계획을 뜻한다. 예로부터 우리는 교육은 백년지대계라고 얘기했다. 그만큼 교육은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으며 그 결과가 1~2년 내 나타날 수 없다는 의미다. '권의지계(權宜之計)', 아침저녁으로 뒤바뀌며 시류에 야합하는 즉흥적이고 편의적인 계획이란 말이다. 백년지대계와 반대되는 개념이다. 우리 교육현장을 보면 백년지대계보다 권의지계가 어울리는 듯하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언제 또 교육정책이 바뀔지 몰라 조마조마하다. 대학들의 2014년도 입학전형 계획 자료를 보면 이런 안내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입학전형은 변경될 수 있습니다." 백 년은 언감생심, 10년, 아니 1년 앞도 내다보기 힘들다.


최근의 선행학습금지법 논란을 보면 교육정책이 얼마나 불신을 받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표적인 교육 공약인 선행금지법. 사교육을 줄이기 위해 교과 진도보다 앞선 내용을 가르치거나 교과 내용 밖 문제를 출제하는 학교는 엄벌한단다. 초등학생의 방과 후 영어회화 공부도 제한된다. 공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법이라는데 환영보다는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공교육 정상화라는 목표 달성은 못한 채 사교육의 배만 불리고 학생과 학부모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걱정이다. '선행사교육 조장법'이라는 우스갯소리까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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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학교와 대학이 이 법을 잘 따라 정해진 범위를 순서에 따라 가르치고 그 범위 내에서 출제한다고 치자. 하지만 일부 학생이 학교 밖에서 사교육을 받는다면 나머지도 마음 편하게 앉아 있을 수 없는 게 우리 교육 현실이다. 사교육으로 달려가는 가장 큰 이유는 교과 내용이 아니라 '두려움'과 '피해의식'이다. 무엇을 배우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고 나만 배우지 않으면 낙오될 수 있다는 심리적 불안이라는 사실을 교육당국은 진정 모르는가.

교육정책을 권의지계라고 비아냥대는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4학년도부터 도입된 수학능력시험 변천사를 보면 가관이다. 수험생들에게 기회를 더 준다며 연 2회로 늘렸다가 다시 연 1회로 되돌리는 등 수시로 변경됐다. 여기에는 공교육 정상화와 경쟁력 강화라는 명분이 늘 따라붙는다. 그런데 매번 공교육이 후퇴했다는 말이 나온다. 교육현장이 이처럼 난맥상에 빠진 이유는 새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정책이 수시로 바뀌고 정책 책임자인 교육부장관은 재임기간 1년여의 단명 신세를 면치 못하는 게 첫손가락에 꼽힌다. 교육부처 명칭도 문교부→교육부→교육인적자원부→교육과학기술부→교육부로 툭하면 변경됐으니 백년지대계를 기대하는 건 애초 무리였던 것 같다. 정부를 감독하고 입법을 책임져야 할 국회도 당리당략에 따라 교육정책을 바라볼 뿐이니 긴 호흡의 정책이 나올 리 만무하다. 비리 사학 등의 독버섯이 이 틈을 파고들어 교육현장을 혼탁하게 만들고 이런 참담한 현실에 절망한 우수한 인재들은 한국을 등진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실현을 명분으로 도입된 교육감 직선제도 원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지 의문이다. 가장 중립적이어야 할 교육이 정당 간 이념 대립의 전면에 서면서 갖가지 부작용이 발생하고 있다. 새로운 교육정책을 입안하거나 추진할 때 미래를 내다봐야 하는 게 기본이다. 그래야 예측 가능성이 생기고 정책에 대한 신뢰가 쌓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현장의 목소리를 새겨듣고 학부모·학생 등 교육주체들의 여론을 충분히 수렴한 뒤 정책을 마련하고 추진해야 한다. 정치권도 교육에 정치를 끌어들이지 말아야 하는 게 당연하다. 정부따라, 장관따라 교육정책이 오락가락한다는 권의지계의 오명을 이제는 벗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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