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파산에 대해 보수적이던 일본 사회의 인식이 180도로 바뀌고 있다. 지난 2008년 파산신청 법안이 친기업적으로 간소화된 데 힘입어 일본항공(JAL)이 불과 2년여 만에 회생에 성공하자 파산을 '기업의 무덤'에서 '도약의 발판'으로 보게 된 것이다.
28일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다음달 말 도쿄증시 재상장을 앞둔 JAL의 사례를 통해 이 같은 인식변화를 집중 보도했다. 과거 일본에서 법정관리는 기업과 경영인의 명예에 먹칠을 하는 것에 불과했다. 한번 넘어진 기업이 회생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했다.
2010년 미국 기업의 파산건수는 6만여건에 달했지만 일본은 1,000여건으로 1.7% 수준에 불과했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경기악화가 미국과 일본을 가리지 않고 덮쳤지만 파산만은 면해야 한다는 심리가 큰 이유로 작용했다.
복잡한 일본의 파산 관련 법안도 한몫을 했다. 1962년 시행된 일본 파산 관련법에 따르면 파산신청 기업은 의무적으로 경영진을 교체해야 하고 법원의 승인을 얻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필요했다. 1990년대 일본 경제위기로 쓰러진 아시카가홀딩스의 경우 2003년에야 법정관리 승인이 내려졌을 정도다. 정상적인 경영활동을 못하는 '식물기업'이 되느니 어떻게든 버텨야 한다는 인식이 기업인들 사이에서 만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2008년 기업회생금융(DIP파이낸싱)이 도입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파산신청 기업이라도 경영진이 회사에 남을 수 있고 영업활동도 정상적으로 이뤄지면서 법원의 승인을 얻는 데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도쿄-마루노치법률상담소의 시게루 나이토 변호사는 "과거 파산은 부실기업의 마지막 선택이었지만 이제 성공의 발판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0년 파산을 선언한 JAL이다. JAL은 평소와 같은 영업활동을 하는 한편 구조조정을 단행해 눈부신 성장을 일궈냈다. 2011회계연도(2011년 4월~2012년 3월) 영업이익은 2,049억엔을 기록하며 2010년(1,884억엔)의 사상 최고치를 다시 한번 경신했다.
다음달 말에는 도쿄증시에 재상장해 65억달러의 자금을 조달하면서 3년 만에 화려하게 부활할 예정이다. 지금까지는 일본 소매점 체인인 막스벨루도카이가 6년10개월 만에 회생한 게 최고 기록이었다.
파산기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2월 파산을 선언한 반도체 제조업체 엘피다에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엘피다는 지난달 미국 마이크론테크놀로지를 우선협상자로 선정하고 8월 법원에 회생법안을 제출할 계획이다. 이치요시투자회사의 미쓰시게 아키노 선임 펀드매니저는 "엘피다까지 회생에 성공한다면 파산신청은 부실기업을 재건하는 효과적인 대안으로 급부상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같은 파산기업의 '화려한 증시 귀환'이 일본경제의 엔진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마코토 이토 골드만삭스 일본지부장은 "침체된 일본 IPO시장에 파산으로 떠났던 기업들이 돌아오면 유동성을 불어넣고 투자기회를 늘리게 돼 경제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