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베토벤 말년 추적하는 루게릭병 음악학자의 여정

연극 '33개의 변주곡'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면서도 미완의 무엇인가를 완성하기 위한 인간의 치열한 몸부림과 절규가 처절하기만 하다. 연극 '33개의 변주곡'은 근육이 굳어가는 루게릭병을 앓으면서도 베토벤(1770~1827) 말년의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미국의 음악학자 캐서린의 이야기다. 베토벤은 왜 '구두 수선공의 헝겊 조각에 불과할 뿐'이라며 스스로 혹평했던 디아벨리의 왈츠곡에 집착해 변주곡을 33개씩이나 만들었을까. 그저 지나쳐 버릴 수도 있는 이 한 가지 의문을 갖고 독일까지 날아가 파헤치는 음악학자의 현재(21세기)와 베토벤의 말년(19세기)을 오가며 무대의 시간과 공간은 자연스럽게 겹쳐진다. '디아벨리 왈츠에 의한 33개의 변주곡'은 베토벤이 작곡한 연주곡 가운데 가장 심오한 곡이란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캐서린은 베토벤이 왜 디아벨리의 왈츠 곡에 그토록 집착했는지 원인을 추적한다. 점점 굳어가고 귀와 눈의 기능조차 잃어가는 몸을 이끌고 베토벤의 고향인 독일 본의 '베토벤 하우스'에 보관된 베토벤 자필 악보 스케치들을 몇 개월간이나 들여다 본다. 캐서린의 딸 클라라는 연구에 몰두하느라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을 자신에게 나눠주지 않는 어머니를 이해할 수 없지만 결국 독일로 찾아가 그녀를 보살핀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캐서린의 풀리지 않는 베토벤 연구에 결정적인 힌트를 주는 사람은 바로 죽음을 무릅쓴 연구에 반대했던 딸 클라라다. 이 작품은 예술을 통해 삶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그러나 서툰 직설법으로 관객들에게 뻔한 교훈을 주기 보다는 위대한 음악가와 그를 탐구하는 음악학자의 치열한 생애 마지막 순간을 피아노 선율에 자연스럽게 녹여내 관객들로 하여금 인생을 돌아보게 해준다. 특히 베토벤이 자신의 한계에 정면으로 맞서며 만들어낸 걸작이 피아노 건반을 타고 관객 사이로 울려 퍼지는 클래식의 향연은 누구도 기대하지 못했던 호사라고 할 수 있다. 캐서린 역을 맡은 윤소정은 시종일관 침착함을 잃지 않으며 길고 지적인 대사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베토벤 역의 박지일 과 클라라 역의 서은경 등 배우들의 농익은 연기도 묵직한 무게감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다. 웃음소리는 가득하지만 공허함이 짙은 요즘 대학로의 가벼움에 지친 관객이라면 오랜만에 단비를 만난 듯 의미 있는 시간을 만날 수 있다. 11월 23일까지 서울 동숭아트센터 동숭홀. 1544-1555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