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주친 시간은 극히 짧았다. 노무현과 그녀의 눈길이 한곳에 머물러 있다가 허공으로 흩어져갔다. (...) 그녀는 순교자처럼 거리에 서서 포효하고 있는 사내가 노무현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다. 프랑스로 떠나기 전 81년도 부림사건, 미문화원 사건, 또 지난 2월의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때 신문에 실렸던 얼굴이 기억났다. 한 번도 만난 적은 없었지만 그가 바로 노무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1987년 6월 18일 부산, '그녀 김수경'은 친구 노무현과의 첫 만남을 그렇게 기억한다. 아마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때 그녀를 보지 못했을 거다. 두 사람이 실제로 인사를 나눈 것은 1989년 12월 말 혹은 1990년 1월 어느 날이었다. 마포의 어느 한 고깃집에서 김정길 전 행정자치부 장관의 소개로 만난 두 사람은 이후 노래방을 함께 다니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수다를 떨기도 하는 친구가 된다. 물론 이 역시 정확한 사실은 아닐지도 모른다. 둘은 그전에도 만났었지만 기억하지 못하는 걸지도 모른다. '내 친구 노무현'은 순전히 '그녀 김수경' 한 사람의 사적 기억에 의존하는 소설이기 때문이다.
소설의 시간은 2009년 5월 23일 '그녀 김수경'이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접하는 장면에서부터 시작돼 2002년 대통령 취임 직전 마지막으로 만났던 장면으로 끝을 맺는다. 그러나 이야기의 알맹이는 처음 만난 1990년대 초부터 노 전 대통령이 되기 전 약 10년간에 걸친 두 사람의 사귐이다. 부산시장과 종로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진 노 전 대통령이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털어 놓은 이야기, 사랑하는 여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 소나기를 만난 청년 노무현의 이야기, 함께 영화를 본 이야기 등을 통해 고인의 다양한 삶의 모습들을 발견할 수 있다.
작가는 소설이라는 장르를 택한 이유에 대해 "전기를 쓰려면 모든 순간에 대한 증빙이 있어야 하는데 사진이나 메모 같은 게 없어 대부분 기억에 의존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나의 주관적·감정적 진실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소설이 아니면 안 됐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어 "노무현이 공적·역사적 인물이므로 없었던 일, 허구는 하나도 쓰지 않았다. 오히려 소위 언론에서 '팩트'라고 제시됐던 것들과 내가 소설을 통해 내보이는 것들 중 어느 쪽이 진실에 가까운지를 묻고 싶은 마음도 있다"고 덧붙였다.
작가는 이어 노 대통령의 취임에서부터 죽음을 다룬 '이것은 소설이다', 2012년 자신의 이혼을 소재로 정치적 환경이 개인의 삶에 어떻게 내재화하는지를 다룬 '62세의 이혼'까지 총 3부작을 출간할 계획이다. 1만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