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글로벌 포커스] 서브프라임 사태 1년

세계 금융시장 뒤흔든 충격파… "아직도 진행중"<br>헤지펀드-투자銀-모노라인-국책모기지 잇단 부실<br>금융권 손실 5,000억弗·글로벌 시총 8조弗 증발<br>"주택시장 바닥 안보여" 신용위기 해소 시간 걸릴듯





뉴욕 월가의 간판 투자은행에서 채권 트레이더로 활동한 한국계 O모씨(41). 한국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미국 예일대에서 MBA(경영학석사)과정을 마친 그는 투자은행에서 좀 더 경력을 쌓아 헤지펀드를 설립하려던 꿈을 접었다. 그는 지난 5월 부서감원 조치로 해고돼 요즘 10년 만에 한국 행을 고민중이다. O씨는 "지난해 늦은 여름 월가 은행들이 수십억 달러씩의 손실을 예고하고서야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혀를 내둘렀다. 서브프라임 부실사태는 처음엔 그 실체를 알 수 없었고, 투자자들은 가공할 파괴력을 가늠조차 못했다. 위기는 끝났다 싶으면 끈질긴 생명력으로 부활했다. 시간이 갈수록 '서브프라임 괴물'은 얼굴을 달리하면서 위력을 더 키워갔다. 지난해 8월 터진 서브프라임 모기지발 신용위기는 1년이 지난 지금도 미국은 물론 글로벌 금융시장을 뒤흔들고 있다. 서브프라임사태는 미 부동산 버블 붕괴와 '묻지마 대출'을 해 준 은행의 모럴해저드(도덕적해이), 과도한 증권화를 초래한 월가의 최첨단 금융공학과 탐욕이 만들어낸 결과다. 지난해 8월9일 유럽계 BNP파리바의 3개 펀드 환매 중지 소식에 글로벌 금융시장은 충격에 도가니에 빠졌다. 다우존스 지수는 1주일간 6% 폭락했고, 신용시장은 얼어붙었다. TED스프레드(3개월 물 리보와 미 재무부채권금리 격차)는 이 기간 중 0.44%포인트에서 1.65%포인트로 4배 이상 폭등했고, 글로벌 자금은 안전자산으로 일제히 도피했다. 앞서 7월17일 베어스턴스 소속 2개 헤지펀드 청산은 글로벌 신용경색을 알리는 전주곡이었던 셈이다. 2007년 봄 서브프라임 모기지 회사가 연쇄 부도에 휩쓸릴 때만 해도 서브프라임 문제는 '찻잔 속의 태풍'쯤 여겨졌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미국 모기지 대출의 13%인 1조2,000억 달러 수준. 미 전체 금융자산의 1.4%에 불과하다. 벤 버냉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장은 지난해 7월 "서브프라임 부실이 금융시장과 경제전반에 전이될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으나, 그의 판단은 이내 틀린 것으로 확인됐다. 금융 기관들은 지난 1년간 5,000억 달러에 육박하는 손실을 입었다. 지난 1년간 글로벌 시가총액은 8조6,021억 달러가 사라졌다. 게다가 미 경제는 전후 최악의 침체에 내몰리고 있다. 서브프라임 사태는 잠잠해졌다가도 이내 재발, 과거 금융위기와 사뭇 다른 패턴을 보였다.부실의 진앙지인 주택가격 하락이 멈추지 않아 누적된 잠재부실은 어떤 형태로든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구조였다. 부실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었지만, 그 규모 조차 파악하기 어려웠다. 치유는 더욱 힘들었다. 월가는 패닉에 빠졌고, 금융 당국은 허둥댔다. 제2차 위기는 그 해 가을 재발, 월가에 '상각처리 공포'로 나타났다. 상각처리 규모를 전망한 월가의 리포트 한 장에 글로벌 금융시장은 요동을 쳤다. 씨티그룹, 메릴린치, 베어스턴스 최고경영자(CEO)가 줄줄이 낙마했다. 신용 위기는 이듬해 '모노라인' 부실 사태로 확대, 재생산됐다. 월가에 시스템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섬뜩한 경고가 나왔다. 지난 3월 85년 역사의 베어스턴스 몰락으로 신용 위기는 절정으로 치달았다. 미 금융당국의 대응수위도 점점 높아졌다. FRB는 금리를 1월과 3월에 모두 3차례에 걸쳐 2%포인트 내렸다. FRB는 베어스턴스 몰락 직후 투자은행에게도 재할인 창구를 개방했다. 투자은행에 긴급 수혈하기는 대공항 이후 처음이다. 앞서 1월에는 부시 행정부는 경기낙관론을 접고 1,600억 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마련했다. 5월부터 세금 환급 수표가 발송되면서 미 경제에 온기가 돌았다. 최악의 위기는 끝났다는 분석이 고개를 들기도 했다. 그러나 모기지 시장의 잠재적 뇌관이던 국책 모기지기관인 패니 매와 프레디 맥의 파산위기가 불거지면서 이런 낙관론은 채 2개월을 가지 못했다. 그러면 신용 위기는 언제쯤 끝날까. FRB는 지난달 30일 투자은행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내년 1월까지 연장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뒤집어 본다면 3.25%포인트의 금리인하와 2,500억 달러의 유동성 공급에도 불구하고, 시장 정상화는 아직 멀었다는 의미가 된다. 서브프라임 사태로 금융권의 손실 규모는 2조 달러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모기지 시장 구조의 특성상 부실의 싹인 집값 하락이 멈추지 않는 한 위기의 끝을 확인하기 어렵다. 앨런 그린스펀 전 FRB의장은 "주택시장의 바닥이 보이질 않는다"며 "주택시장이 안정화될 때까지 더 많은 은행들이 파산 위험에 직면하고 결국 정부의 구제를 받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금융 위기는 아직도 진행 중이라는 의미다. 설령 신용 위기가 최악을 벗어났다고 해도 시장이 이번 사태의 후유증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당 기간의 회복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신용 위기가 끝날 때 즈음 세계 경제는 미 경기침체라는 악재에 또 다른 시련을 맞을 것으로 우려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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