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데스크 칼럼] 해외 M&A는 좋지만…

지난 97년 1월에 눈 덮인 길을 몇 시간이나 헤매며 미국 콜로라도주 포트콜린스라는 도시를 방문한 적이 있다. 북미 대륙을 관통하는 로키 산맥과 광활한 중부 프레이리 평원이 접하는 그 곳에 현대전자가 인수한 심비오스 로직이라는 회사가 있었다. 이런 곳까지 한국 기업이 진출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적자투성이던 이 회사는 현대전자에 넘어간 후 2년만에 흑자를 달성했고 현지에서 신용만으로 자금 조달이 가능했다. 백년 전 서부의 금광을 찾아 나선 유랑객들이 만든 이 도시에 한국 기업이 하이테크 산업에서 미래의 금맥을 찾아온 게 아닌가 착각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회사는 1년 후 미국기업에 매각됐다. 한국 경제가 경제 위기의 수렁에 빠지고 한국 모기업의 자금시장이 악화됐기 때문이다. 우리 기업들은 90년대 중반에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며 세계 각지에 기업을 사들였다. 콜로라도의 심비오스도 그 중 하나였다. LG전자가 미국 가전산업의 상징인 제니스를 사들인 것도 그 무렵이다. 원화가 올라가자 기업들은 해외에 기업 사냥을 나선 것이다. 하지만 외환위기가 터지고 원화가 절하되자 한국 기업들은 해외 인수 기업들을 줄줄이 매각했다. 10년을 주기로 우리경제가 다시 원화 절상의 사이클을 타자 기업들이 해외 기업 인수에 적극 나서고 정부도 기업들의 해외 인수ㆍ합병(M&A)을 지원하기 위해 구체적인 방안을 세우고 있다. 두산인프라코어가 미국 건설장비회사인 잉거솔의 보브캣 브랜드를 49억달러에 인수한 것은 우리기업들의 해외 M&A의 시금석이 되고 있다. 국영기업인 한국전력도 해외 기업 인수를 추진하고 은행들도 해외금융기관 인수에 나서고 있다. 기업들이 이처럼 해외기업 인수에 적극 나서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최근 수익이 호전되면서 기업들에 여유자금이 넉넉해졌고 원화강세로 해외 물건(기업) 값이 상대적으로 싸진 점을 들 수 있다. 해외 M&A를 하기 위한 좋은 시장 여건이 형성된 것이다. 또 국내 시장이 좁아 해외에서 돈을 벌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성장잠재력이 떨어진 국내 시장에서 제살깎기식 경쟁을 벌이기보다는 연평균 10% 이상 고도성장을 하는 중국ㆍ인도ㆍ러시아ㆍ브라질ㆍ베트남 등 신흥시장에서 사업을 확장하는 게 유리하다. 하지만 기업들의 해외 M&A 진출은 몇 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 국내 기업과 금융기관들에 해외정보에 밝고 딜에 강한 전문가가 부족하다는 점이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잉거솔 인수에 대해 월스트리트저널과 블룸버그 등 미국 언론들은 동종업체인 캐터필러 매각과 비교해 비싸게 거래됐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한국기업들이 국제 거래에서 실력과 배짱으로 대응할 인적 자원이 부족하다는 방증이 아닐까. 둘째, 국내기업이 해외거래를 할 때 국내 금융과 공조체제를 형성할 필요가 있다. 한국금융기관이 해외경쟁력이 뒤떨어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국내기업과 해외 진출할 경우 동반 성장할 기회를 갖는다. 아울러 국내 자금(원화)을 수출해 원화 강세의 속도를 늦춰 제조업의 수출경쟁력을 높이는데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정부가 기업의 해외 M&A에 적극 지원하는 모양새를 보이는 것은 자제할 필요가 있다. 외국 경쟁상대에 국가보조금을 주는 게 아니냐는 오해의 소지를 만들 수 있다. 가뜩이나 선진국들이 최근 아시아의 국부 펀드 해외진출에 경계심을 곤두 세우고 있는 터에 정부의 지원 운운하는 발상은 역풍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우리는 10년 전에 세계화를 추진하며 해외 M&A에 나섰다가 실패한 경험이 있다. 다시 10년만에 우리기업들이 해외 M&A에 나설 좋은 기회가 온 것은 분명하지만 과거의 실패를 거울삼아 보다 성숙한 자세로 세계시장에 나서는 방안을 연구하고 추진해야 할 때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