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동십자각] 할인점의 정체성 위기

이효영 <생활산업부 차장>

올해로 국내 유통시장이 개방된 지 10년을 맞았다. 시장 개방 초기만 해도 까르푸나 마크로(현재 월마트가 인수) 등 선진 유통업체들의 진출이 전해지면서 국내 시장은 초토화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국내 유통업체들은 훌륭하게 시장을 방어해냈다. 아니 방어해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선진 유통업체들이 한국기업을 벤치마킹할 정도로 세계적인 경쟁력 확보에 성공했다. 지난 10년을 결산해보면 오히려 할인점은 유통시장 개방의 최대 수혜자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10년 만에 국내 최대 유통업태 자리에 화려하게 등극했다. 그런 국내 할인점들이 요즘 집중포화에 시달리고 있다. 그동안은 지방출점을 둘러싸고 중소상인들과 대립하더니 최근에는 중국산 김치, 쌀 저가 판매 등으로 농민단체와도 마찰이 잇따르고 있다. 이 시점에서 국내 할인점들은 정체성에 대해 한번쯤 고민해봐야 된다는 게 기자의 생각이다. 국내 할인점은 너나 할 것 없이 매일 저가 판매(everyday low price)를 표방하고 자사 점포가 최저가격이 아닐 경우 보상해준다는 ‘최저가격 보상제’를 내걸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할인점이라는 업태는 서구의 일반적인 개념과는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내 할인점 소비자들은 대부분 자동차가 있고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음을 감안할 때 서민층 소비자만이 아닌 중산층을 겨냥한 상품 전략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강남 지역 할인점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문을 연 이마트 양재점이 개점 초기 연일 매출 기록을 세운 사실은 국내 할인점 소비자들의 수준을 입증한 사례인 셈. 미국 월마트 역시 중국을 비롯한 전세계에서 저가 자사상표(PB) 상품들만 발굴해 판매하다 결국은 중산층 고객들이 매장에서 빠져나가고 히스패닉ㆍ흑인 등 서민층 소비자들이 주류를 이루면서 ‘월마트=싸구려’라는 인식 때문에 고민하고 있다. 최근 들어 월마트도 경쟁업체인 ‘타겟’이 최신 유행 경향을 반영한 의류, 세련된 디자인의 가구 등을 내놓으면서 인기를 끌자 무조건 최저가 제품만을 고수해온 기존 전략에서 변신을 모색하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한다. 국내 할인점들도 한번 귀기울여봄 직한 대목이 아닌가 싶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