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 오래된 미래의 땅… 지성인들의 땅, 내포

이들은 같은 곳서 꿈을 키웠다

■ 내포 문화의 탄생

김기현·김헌식 지음, 북코리아 펴냄



하천·평야·구릉 갖춰 기름져 지리·경제적 역사의 중심지
선진 문물·문화예술 싹 틔워

현대엔 교통변화로 쇠퇴했지만 中 수교 후 무역항으로 재부상
내포 연원·인물·사건 등 조명


'내포'라는 곳이 있다.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열 고을을 일컬어 내포라고 한다"며 "충청도에서 내포가 가장 살기 좋은 곳이다"라고 썼다. 내포(內浦)는 순수한 우리말로 '안~개'라고 하는 데 '안'은 말 그대로 안쪽이고 '개'는 바다와 육지가 닿는 곳을 말한다. 즉 바다가 육지안으로 깊숙이 들어온 곳이라는 의미다. 일반적으로는 지금의 충청남도와 경기도 일부, 즉 충남의 내포시ㆍ홍성군ㆍ예산군ㆍ당진시ㆍ서산시ㆍ태안군ㆍ보령시ㆍ청양군ㆍ천안시ㆍ아산시, 그리고 경기도의 화성시ㆍ안성시ㆍ평택시를 아우르는 말이다.


내포 지역은 한반도에서도 독특한 지역이다. 하천과 평야, 구릉이 이어진 기름진 땅은 농업생산량을 최대 한도로 높였다. 서울을 중심으로 한 역대 중앙정부는 이 지역을 식량 등 국가운영의 물적 토대로 삼았다. 경제적 풍요를 기반삼아 많은 인재들이 자라났다. 사상과 학문 예술을 융합한 김정희, 조선유교의 핵심 사상을 계승한 한원진, 이순신 장군, 그리고 김좌진ㆍ윤봉길ㆍ한용운 등 의로운 투쟁에 나섰던 독립운동가들이 있다. 중고제와 내포제, 내포춤 등을 통해 알 수 있듯 문화예술의 고향이자 예향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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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포 문화의 탄생'은 이러한 내포지역이 배태시킨 우리 문화의 원형을 탐색한 보고서다. 기원전후 고구려와 백제를 열고 일본의 시원이 된 '소서노의 정신, 큰 나라를 잉태하다'에서 시작해 부국을 향한 박정희 최후의 꿈과 비전을 그린 '가로림만에 대통령 헬기는 왜 떴을까'까지 36개의 스토리를 통해 내포를 밝히고 있다.

풍요로운 땅은 때로는 수탈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힘께나 쓴다하는 중앙의 권세가들은 내포지역에 수많은 장원을 소유했다. 왕실에서도 궁방전을 두었는데, 예컨데 삽교천 일대에 유난히 '궁(宮)'자가 들어간 지명이 많은 이유다. 이는 지주와 소작간의 갈등을 심화시켜 사회불안요소가 되기도 했다.

가장 중요하게는 내포지역이 교통의 요지라는 점에 있다. 과거 바닷길이 국내외 교통의 중심이었을 때 내포가 기점 노릇을 했다. 중국 등 대륙에서 한반도 남부와 일본을 가기 위해서는 거의 대부분 내포 앞바다를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내포에는 새로운 문명의 도입이 빨랐고 우리 역사에서 명멸해간 수많은 왕조들이 중요시하는 땅이 됐다.

가장 최근에는 기독교의 전파지 역할을 했다. 오는 8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문할 예정인 당진 솔뫼성지는 바로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이 태어난 곳이다. 역대로 내포의 주요 도시이기도 했던 해미읍성에는 1866년 병인박해 때 천주교 신자 1,000여명이 처형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내포에는 고구려와 백제를 세운 창업 '여대왕' 소서노, 세계경영의 흑치상지, 대륙경영의 꿈을 키운 최영 등의 자취가 서려있는 곳이다.

현대에 들어서 내포가 쇠퇴한 이유는 거꾸로 경제와 교통의 변화 때문이다. 국가의 중심교통로와 산업단지들이 서울과 대전, 부산을 잇는 대각선 축에 집중되면서 내포는 소외된다. 항공교통이 우위를 차지하고 또 공산화된 중국과의 교류가 끊기면서다. 다시 시대가 변했다. 1992년 중국과의 수교 이후 서해를 면한 내포는 무역항으로 재부상하고 있다. 아산만을 중심으로 자동차ㆍ철강 등 기간산업의 건설도 활발하다. 가왕 조용필, 일본 원조 한류가수 계은숙을 시작으로 다양한 문화예술의 주역들을 내놓으면서 다시 한국문화의 중심이 되고 있다. 책이 '오래된 미래'인 내포를 그린 이유다. 값 2만원.


최수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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