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리빙 앤 조이] 빛으로 엮은 '세상만들기' 잠자던 감성 되살아나다

■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

일본 작가 나야기 미와는 여성의 신체를 왜곡해 원시성과 폭력성을 드러낸 대형 사진작품을 선보였다.

아르헨티나 작가 토마스 사라세노의 뒤엉킨 검은 선들은 복잡하게 꼬였지만 방향성과 하나의 구로 모리는 인간 세상을 형상화했다.

수영장에 뛰어들어 자살한 남성을 표현한 덴마크와 노르딕3국 국가관의 야외 설치작품.

산마르코 광장과 두칼레 궁전, 혹은 무라노 유리공예, ‘물의 도시’ 등으로 유명한 도시 베니스.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도시인 이곳은 매 홀수 년 여름이 오면 현대미술의 새 역사를 쓰는 곳으로 떠들썩해진다. 1895년에 처음 열린 베니스 비엔날레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유명한 비엔날레다. 지난 7일 공식 개막한 제 53회 베니스 비엔날레는 스웨덴 출신의 큐레이터 다니엘 번바움이 총감독을 맡았고 77개국 600여명의 작가가 참여해 11월 22일까지 현대미술의 최신 경향을 한 자리에서 펼쳐 보이고 있다. 기발함을 일삼는 예술가들 중에서도 재능과 실력을 인정받은 작가만이 입성하는 자리인지라 눈과 귀가 놀라고 잠자고 있던 온갖 감성이 되살아 나는 듯 하다. 거울·샹들리에등다양한 소재 활용
사회적 공공성과 사적인 관계 표현
베니스 비엔날레는 국가관 전시와 주제 전시로 크게 나뉜다. 해변 공원인 카스텔로 자르디니(Jiardiniㆍ공원)에 30개국 국가관이 들어서 있어 각국의 미적 안목을 뽐내고, 19세기 조선소가 있던 공장지대인 아르세날레(Arsenale)를 중심으로 주제전이 펼쳐진다. 베니스의 명소인 산마르코 광장에서 수상버스로 두 세 정거장 동쪽으로 가면 이곳에 닿을 수 있는데 두 전시장을 연결하는 셔틀보트가 무료로 관람객들을 실어 나른다. ◇세상은 빛으로부터 시작됐다=번바움 총감독이 정한 이번 전시의 주제는 ‘세상 만들기(Making Worlds)’. 포괄적인 주제 덕분에 과거와 미래를 아우르는 작가들의 세계관과 영감이 번뜩인다. 성경에서 ‘빛이 있으라’는 말로부터 천지창조가 시작된 것을 떠올리게 하듯 빛을 활용한 작가들의 감각이 특히 눈길을 끌었다. 아르세날레관 입구에서 만나는 브라질 출신 작가 리지아 파페의 작품은 어둠 속에서 쏟아져 내리는 빛을 보여준다. 가는 피아노 줄을 천장에서 바닥까지 팽팽하게 사선으로 배열한 뒤 그 사이로 조명을 비춘 것이 작품은 ‘특별 언급상’을 받았다. 미국작가 패 화이트가 크리스털부터 깨강정까지 다양한 소재를 동원해 만든 샹들리에 작품들도 인상적이다. 한국작가 양혜규의 본전시 작품 역시 빛을 소재로 한다. 전선, 일상집기, 폐품에 빛을 뒤섞은 광원조각 작품 ‘도메스틱스 오브 커뮤니티(Domestics of Community)’는 외형적으로는 가렸지만 건너편을 볼 수 있는 블라인드로 씌워져 있다. 작가는 사회적 공공성과 사적인 관계를 동시에 보여주려 한다. 또 다른 빛의 도구인 거울은 이탈리아 작가 미켈란젤로 피스톨레토에 의해 우리의 자화상을 반추한다. 양쪽 벽을 둘러싼 대형거울은 그 안에 서있는 관람객을 서로 비추어 한 사람의 존재를 수도 없이 확장시킨다. 여기다 여러 갈래로 금이 나 깨진 상태로 서 있는 거울은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모양을 만들어내 ‘거울 회화’로 불린다. 자르디니 쪽으로 넘어가면 옛 이탈리아관을 팔라초(Palazzo)로 이름을 바꿔 운영중인 또 하나의 본전시 공간이 있다. 건물을 뒤덮은 지중해의 바다 풍경은 미국의 개념주의 미술가 존 발데사리가 그린 벽화이다. 공로상에 해당하는 ‘평생업적 황금사자상’을 받은 작가로 위쪽에 적힌 ‘비엔날레(La Biennale)’라는 글씨가 미술의 바다로 관람객을 유혹하는 손짓 같다. 1층 가운데 전시장은 아르헨티나 작가 토마스 사라세노가 검은 끈을 한방 가득 채웠다. 강한 철재로 보이지만 천을 꼬아 굵게 만든 선이다. 한쪽 끝이 바닥에 매어있는 끈들은 이리저리 꼬여있지만 결국 중앙으로 향해 원구형 구조물을 형성한다. 끈을 일일이 매듭으로 묶어 연결했다는 점이 인상적이며 역동적인 운동감과 응집력이 강력한 인상을 준다. 수많은 선들과 교차하는 방향이 결국 한 곳으로 모여 우리가 사는 세상을 이루고 있다는 것을 은유하는 듯하다. 눈부시게 빛나는 하얀 벽과 검은 선이 대조를 이룬다. ◇세상을 향한 날 선 비판= 옛 이탈리아관 팔라초의 지하로 내려가면 가장 인기 있는 곳 중 하나인 스웨덴 작가 나탈리 뒤르버그의 전시장에 이른다. 명품브랜드 프라다가 전폭적인 지지를 하고 있는 젊은 작가로 우리나라에서도 경희궁에 설치중인 ‘프라다 트랜스포머’전의 일환으로 7월말부터 만나볼 수 있는 작가다. 진흙을 빚어 만드는 클레이 아트로 유명한 뒤르버그는 사람의 몸집만 한 식물 형상 수십 점을 빚어 어둑한 조명 속에 즐비하게 세워놨다. 제목은 ‘에덴의 동산’이지만 느낌은 초현실적이고 괴기스러운 밀림에 발을 들인 듯하다. 어둠 속에서 상영중인 영상물은 가학적인 성행위, 수도사들이 여성을 희롱하는 장면, 천주교 성직자가 여성을 겁탈하는 내용 등 파격 그 자체다. 불쾌함을 호소하는 관람객도 있으나 대부분은 눈을 떼지 못하고 끝까지 지켜본다. 작가는 인권, 문명, 동성애, 인종차별 등 다양한 문제의식에 대해 근원적인 두려움을 일부러 자극해 얘기를 풀어낸다. 뒤르버그는 비엔날레 사무국이 젊은 작가에게 수여하는 ‘은사자상’을 거머쥐었다. 홍콩의 젊은 작가 폴 챈 역시 섹스를 매개로 권위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벽에 투사한 그림자인형극에서 작가는 동심을 제거하고 공포만 남겨놨다. 국가관들이 모여있는 자르디니에서는 사회와 문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더 크게 울리고 있다. 덴마크와 노르딕 3국의 전시관을 보자. 하얀 건물 앞에 조성된 작고 파란 풀장에 한 남자의 시체(?)가 둥둥 떠 있다. 옷을 다 입은 채 두 팔을 앞으로 뻗고 엎드린 자세의 남자는 발뒤꿈치가 퉁퉁 불어있는 것으로 보아 물 속으로 뛰어든 지 상당 시간이 흐른 것으로 보인다. 물 밖에 벗어둔 신발과 양말이 그의 심경과 사연을 웅변하고 있어 감상자는 각자의 현실적 관점에서 이 상황을 해석하면 된다. 일본관 작가 야나기 미와의 사진작품에는 원시성을 드러내는 여인이 비정상적으로 확대된 큰 가슴을 휘두르며(?) 공격성을 보여주고 있다. 하얀 천막 안에 설치된 영상물은 몸을 낮추고 엎드려야 제대로 볼 수 있기 때문에 관음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비엔날레가 늘 그럿듯 이 작품역시 혹평과 호평이 뒤섞인다. 이번 비엔날레에서 가장 인기 있는 국가관은 세계적인 개념미술가 대가 브루스 나우만의 작품을 선보인 미국관이다. 입장을 기다리는 관람객이 수십미터 이상 줄을 서 있는 진풍경을 연출한다. 네온, 밀랍, 물, 청동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한 나우만의 작품들은 미국관에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안겨줬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