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신뢰못준 금융시장 안정책(초점)

◎수습시기 놓치고 뒤늦은 처방 원칙 나열만/“기아사태 해결” 사태본질 제대로 파악못해정부의 금융시장 안정대책은 실기를 거듭했다. 그나마 이번 사태의 본질을 외면하고 있다. 정부가 지난 25일 발표한 대책이 시장 상황을 제때 수습할 시기를 놓친 데다 나온 처방도 지원 원칙을 나열하는 선에 그쳤기 때문이다. 은행과 종금사는 자금이 고갈돼 기업에 대한 지원은 커녕 자금 회수에 급급한 상황이다. 기업들이 당장 연쇄부도 위기에 몰려 있는데도 정부는 자구노력후 지원이라는 한가한 수식어들만 나열하고 있다. 특히 이번 금융시장 교란의 직접적인 원인이 기아그룹사태와 관련된 정부의 엉뚱한 처리방침으로 장기화된 파장임에도 정작 이번 대책에 기아사태의 해결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이는 기업 연쇄도산이 금융기관 부실화로 번지고 다시 국가신용 추락으로 이어져 국가경제의 근간이 흔들리는 상황을 빚고 있는 이번 사태 전개의 연결고리를 정확히 제시하지 못한 결과다. 정부가 금융시장 안정대책을 발표한 다음날인 지난 26일 원화의 대미 달러환율은 한때 9백9.50원까지 치솟았다가 당국의 개입으로 9백.50원에 마감됐다. 시장금리도 정부 대책이 발표된 지 하루만에 일제히 상승세를 나타냈다. 27일들어 외환시장과 자금시장은 각각 보합세로 돌아섰으나 당국 개입에 대한 경계감에 억눌려 일시적인 「진통」효과를 보인 것일 뿐 시장 기류의 안정 정착에 따른 보합세로 보기는 무리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번 금융시장 안정대책에서 강경식경제팀이 힘주어 강조한 부분은 「모든 금융기관의 대외채무에 대해 정부가 지급보증한다」는 선언이다. 금융관계자들은 이번 대책의 핵심이 금융기관의 부도사태를 정부가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지 천명이라면 왜 그토록 시간을 끌어 시장심리가 온통 꼬이도록 방치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이번 금융교란 사태의 전말을 되짚어보면 이같은 푸념이 나오는 이유는 명확하다. 당초 기아그룹이 부도유예협약의 적용대상이 된 것은 지난달 15일. 공교롭게도 기아그룹의 주거래은행은 이미 우성·한보의 부도 뒤처리로 「부실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제일은행이다. 또 기아그룹뿐 아니라 종금업계에서 단기자금을 많이 끌어 쓴 모그룹의 자금위기설이 겹치면서 대부분 종금사들은 피를 말리는 자금압박에 시달려 일부 지방사들은 외화자금 부도위기에 몰리는 아슬아슬한 상황까지 연출됐다. 이달초부터 금융시장 곳곳에서 이른바 「금융대란」설이 횡행했으나 당국은 채권은행단을 앞세워 기아그룹측과 「누가 더 고집이 세나」를 겨루느라 정신이 팔려 금쪽같은 시간을 놓치고 있었다. 정부가 지급보증 천명을 통해 국내 금융기관의 대외신인도 저하를 막을 생각이었다면 최소한 이달초 이전에 방침을 밝혀 일단 사태를 진정시켜야 했다. 금융기관에 대한 특융지원 계획에 대해서도 당국의 접근방식이 어딘지 앞뒤가 맞지 않다. 당초 정부가 특융지원에 대해 내키지 않는다는 자세를 견지한 이유는 특융의 특혜시비 우려 때문이었다. 따라서 특혜시비를 따지기 어려울 만큼 금융시장 교란양상이 심각해진 최근에 와서야 특융을 지원키로 결정한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금리조건을 당초의 3%에서 8·5%로 높이고 그나마 자구노력 정도를 봐서 특융 규모를 결정하겠다고 단서조항을 붙인 것이다. 정부는 특융지원 대상에 은행뿐 아니라 부도유예협약에 가입한 종금사도 포함시킨다고 강조했지만 오너가 있는 종금사가 특융지원을 받은 뒤 태도를 돌변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결국 정부는 뒤늦게 내린 처방에서조차 엉거주춤한 태도를 버리지 못해 시장참여자 누구에게도 신뢰를 주지 못한 것이다. 시장의 안정은 무엇보다 미래에 대한 신뢰에서 싹튼다. 더욱이 외환시장이나 자금시장은 한 때의 소문, 당국자의 발언 한마디에 걷잡을 수 없이 출렁거리는 속성을 갖고 있다. 금융시장 안정 및 대외신인도 제고 대책이 공식 발표된 뒤에도 여전히 시장지표가 혼란스럽게 흔들리고 당국의 개입이 불가피해진 원인은 무엇인가. 당국의 기대와 달리 이번 대책이 제시됐음에도 금융시장 곳곳에는 여전히 「불안감」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는 반증에 다름아니다. 정부가 시장의 실패를 인정하고 개입키로 결정한 이상, 개입 자체만으로도 시장참여자 모두에게 확신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유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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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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