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김나영 기자의 1일1식(識)] <93> ‘당신들의 천국’과 ‘나만의 천국’


몇 년 전 작고한 소설가 이청준 선생의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1950~1960년대 혼란한 사회와 경제 개발 초기의 집단 간 갈등을 그리고 있는 소설입니다. 작중 주인공 조백헌 대령은 정의감으로 가득 찬 인물입니다. 당시 국가 공동체를 이끌고 가는 엘리트에 속했던 그는 전역 이후의 삶을 나환자들을 위한 봉사와 복지 사업에 대한 헌신으로 채우겠다고 결심하고 소록도로 갑니다. 그리고 한센병 환자들을 치료하는 병원을 이끌며 그들과 더불어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나갈 것을 표방합니다. 그러나 소록도 주민들과 한센병으로 고통받는 환자들은 조 대령의 비전에 공감하지 않았습니다. 과거 병원장으로 부임했던 사람들이 자신의 복지 비전을 이야기하면서 정작 독재와 불통으로 일관했던 사실을 기억하기 때문입니다. 굳건한 신념으로 소록도의 개척 사업을 진행하려 했던 조 대령은 다양한 이들로부터 공격받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강하게 믿었던 소록도 병원으로부터 쫓겨나 천국에서 추방당한 지도자가 되고 맙니다. 따지고 보면 조 대령은 앞만 보고 열심히 한 지도자입니다. 그러나 조직 안에서 여러 작은 집단들끼리 일으키는 갈등과 협력의 관계를 바라보는 통찰은 부족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이 건설한 천국에서 밀려날 수 밖에 없었던 것이겠죠.


리더는 강한 신념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철학과 가치가 실현되는 날까지 굳건한 믿음으로 다른 사람을 변화시키겠다는 각오가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신념과 자아를 동일시하는 순간 다른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불통 리더의 모습도 종종 나타납니다. 훌륭한 창업자나 기업을 위기에서 일으킨 사람들도 자기가 만들어 낸 성공 신화에 매몰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지금껏 자신이 해 왔던 경험, 지식, 네트워크가 일종의 답처럼 여겨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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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여, 야 대표와 대통령이 만났습니다. 덕담처럼 진행되던 3자간의 대면은 인사가 끝나자마자 냉랭한 분위기로 접어들었습니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총체적 위기’라고 규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박근혜 대통령에게 더 많이 들을 것을 강조했습니다. 박 대통령은 여기에 대해 뚜렷하게 답을 하지는 않았지만, 문 대표의 직언을 들으면서 줄곧 메모를 했다는 이야기가 현장으로부터 전해졌습니다. 어찌되었든 의미는 상대방의 가슴에 전달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이 리더들이 모여서 제일 먼저 공유해야 할 것은 나라 걱정과 경제 살리기에 대한 이야기뿐만이 아닙니다. 각자 이끌고 있는 조직에서 얼마나 다양한 목소리를 수렴하고 있는가, ‘나만의 천국’이 아닌 ‘당신들의 천국’을 만들어 가기 위해 여러 집단 간의 갈등과 협력을 어떻게 중재하고 있는지 고민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리더는 조직 전체의 목표를 바라보고 갑니다. 그래서 외부 환경에 주목하고 굳은 신념으로 변화와 혁신을 주도하려 합니다. 그러나 정작 자신의 발 밑은 제대로 살피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 리더는 오해도 받고, 자신의 의도와 달리 독단적인 인물로 비난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묵묵부답’으로 스스로의 일을 열심히 하는 것보다 일단 문제에 대해 허심탄회한 대화를 시작하는 게 중요합니다. ‘내 마음은 한결 같은데, 왜 부하들의 마음은 나뉘고 찢겨져 있는가’에 대한 원초적인 고민을 할 게 아니라, 갈등이 조직의 본질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객관적인 입장에서 ‘해결하시오’라고 하지 말고, 직접 중재에 나서야만 합니다.

/iluvny23@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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