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경제의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기대를 모았던 벤처기업의 뿌리가 흔들리고 있다. 벤처인증 기업수는 2001년 1만1,1392개에서 올들어 3월 8,500여개로 줄어들었고 벤처기업에 영양분을 제공하는 벤처캐피털도 자격증을 반납하거나 단순 투자회사로 업종을 바꾸고 있는 형편이다. 또 지난 99년과 2000년 코스닥 시장 활황으로 `무늬만 벤처`인 기업들이 시장에 너도나도 대거 등록되면서 부실기업을 양산하고 이들 기업이 주가조작과 불공정거래에 가담하면서 벤처기업을 바라보는 일반인들의 시각도 곱지 않다. `한국 벤처호`가 갈 길은 먼데 해는 저물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벤처기업 기반조성이라는 큰물줄기는 이어져야 한다. 몇 개 부실기업이 양산되는 것이 두려워 벤처산업 육성 자체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서울경제신문은 `제15회 중소기업주간(5월 19일~24일)`을 맞아 벤처기업들이 새로운 모멘텀을 갖고 재도약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는 좌담회를 가졌다. 서울 여의도 기협중앙회 회의실에서 열린 이번 좌담회에는 유창무 중소기업청장과 김영수 기협중앙회장, 이영남 여성벤처협회장, 곽성신 벤처캐피탈협회장 등 4명이 참석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사회 = 벤처기업 구조조정이 가속화되면서 이전 양적성장에서 벗어나 질적성장을 이끌어낼 수 있는 다양한 개선방안이 수립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벤처기업이 다시 도약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어 봅시다.
▲김영수 기협중앙회장 = 청년실업을 해결하고 중국의 경쟁제품에 대응하면서 동북아 중심국가 비전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참여정부가 벤처기업에 대해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육성정책을 제시해야 합니다. 먼저 코스닥시장의 수급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퇴출규정을 강화해야 합니다. 수십억원 매출에 수백억원의 적자를 내는 기업들이 시장에 남아있게 된다면 벤처기업에 대한 왜곡된 인식은 사라지지 않고 시장신뢰도 얻기 힘듭니다.
또 연기금 중심의 펀드를 만들어 장내주식을 매입할 수 있는 기반을 넓혀주고 프리코스닥 유동화펀드 규모를 확대해 비등록기업 지원에 나서야 합니다. 대기업이 코스닥주식을 매입하는 경우 출자총액제한제도 적용을 배제하는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영남 여성벤처협회장 = 김회장께서 코스닥시장 건전화를 통한 개선책을 제시해 주셨는데 좋은 지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함께 개별부처에 흩어져 있는 벤처기업 지원책을 중소기업청으로 일원화해 정책 효율성을 높일 필요가 있습니다 정통부, 문화부 등 벤처지원을 둘러싸고 각기 다른 정책을 내놓다 보니 일관성이 결여되어 효과가 반감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특히 벤처기업 판로확대를 위해 정부조달시장을 다시 점검해 과감히 개방하고 벤처기업이 해외시장에 진출해 성공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인프라를 더욱 확충해야 합니다. 벤처기업은 결국 해외시장에서 승부수를 걸어야 하니까요.
▲유창무 중소기업청장 = 옳은 말씀입니다. 정부는 양적성장의 부작용을 시정하면서 벤처 생태계의 질적 재도약에 중점을 둘 것입니다. 벤처확인제도는 오는 2005년 조기종료하지만 남은 기간 동안 KAIST 등 16개 민간평가 기관을 중심으로 공신력을 높이는데 주력할 것이며 매년 평가기준을 상향 조정해 질적 고도화를 꾀할 것입니다. 또 국방물자를 대상으로 구매조건부 기술개발제도를 본격 시행하고 조달규모도 지난해 150억원에서 2007년까지 1조1,500억원으로 늘릴 계획입니다. 이와 함께 해외진출 벤처기업 투자지원을 위해 올해중 1억달러 규모의 글로벌스타 펀드를 결성하고, 미국 보스톤에 `물류 및 AS센터`를 설치하고 연차적으로 미국서부와 유럽 등으로 확대할 것입니다.
▲곽성신 벤처캐피탈협회장 = 벤처확인제도 정비와 마케팅 지원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시급한 것은 벤처기업에 자금이 흘러 들어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벤처기업과 벤처캐피털은 실과바늘 같은 존재로 떼어놓고 벤처산업 육성책을 얘기할 수 없습니다. 지난 2000년 147개였던 창투사는 올해 2월 기준으로 128개로 줄어들었고 창투조합 결성금액도 2000년 1조4,300억원을 정점으로 지난해 7,900억원으로 떨어졌고 올 들어서 2월까지 조합결성이 아예 없습니다. 심각한 문제입니다. 투자조합 결성시 유한책임 조합원으로 정부자금 출자는 지속되어야 하며, 투자조합 성격을 초기, 중기, 후기투자 등으로 나누어 정부 참여비율을 조정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벤처캐피털에 대한 세제지원은 벤처기업 육성특별법이 만료되는 2007년까지 연장되어야 하며, 벤처캐피털 구조를 현재의 주식회사 형태에서 투자조합위주의 유한회사로 전환시켜 투자조합의 안정성을 높이고 인력 전문성을 높이는 방안을 검토해야 합니다.
▲유 청장 = 정확한 지적입니다. 정부는 유한회사형 벤처캐피털 제도도입을 검토 중이며 연말까지 300억~500억원 규모로 최대 2개까지 설립할 것입니다. 또 창투사가 보유한 주식을 사주는 세컨드리펀드(Secondary Fund)를 올해 최대 1,000억원 추가결성하고 민간기관이 출자와 관리를 담당하는 모태펀드(Fund of Funds)를 올해 안에 500억원 규모로 만들 것입니다.
▲김회장 = 창투자금도 중요하지만 기술을 신용으로 한 기금이 마련돼야 합니다. 국회에 벤처기업이 가진 기술로만 신용보증을 하는 기관이 있어야 한다고 건의했고 국회도 검토중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사회 = 벤처육성을 위한 다양한 제안과 정책이 제시되었습니다. 화제를 잠깐 돌려보죠. 일각에서는 벤처기업 자금난을 우려해 프라이머리 CBO 만기가 돌아오는 내년 5월에는 벤처기업들의 부도가 잇따를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습니다. 하루빨리 해결책을 마련해야 하지 않을까요.
▲김 회장 = 지난 2001년 기술신보가 프라이머리 CBO를 100% 보증한 기업은 914개사, 금액은 1조8,000억원에 달합니다. 벤처기업들의 자금난이 가중되면서 일부에서는 지원기업의 10% 이상이 부도나 화의, 법정관리 상태이고 부도직전의 한계기업이 많아 `벤처대란설`이 현실로 다가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성장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선별해 CBO 만기연장을 하거나 벤처기업간 M&A 작업에 나서 예상되는 피해를 줄여야 합니다.
▲이 회장 = 벤처기업의 경우 제품이 나와 판매가 될 때까지는 3~5년 가량 소요되는 점을 감안해 정부가 만기기간을 최소한 5년으로 연장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 청장 = 내수경기 불황과 코스닥 시장 침체로 상환부담이 가중되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현재 실태파악을 하고 있으며 1년 정도의 시간적 여유가 있는 만큼 경기상황과 코스닥 시장 회복정도 등을 살펴가면서 적절한 대응책을 강구할 것입니다.
▲곽 회장 = 벤처 프라이머리 CBO는 본질상 벤처기업 자금조달 수단으로 부적절한 것입니다. 시장검증을 거쳐 자본을 조달해야 하는데 프라이머리 CBO는 원금상환을 전제로 하는 채무이기 때문에 기업 퇴출을 막고 기업가의 재기를 봉쇄하는 역효과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이전의 잘못을 경험 삼아 앞으로 벤처기업 자금공급은 프라이머리 CBO같이 인위적인 수단보다는 시장기능에 맡겨야 합니다. 또 이미 발행된 CBO에 대해서는 만기에 가서 연장이나 주식전환 결정을 할 것이 아니라 파급효과가 큰 만큼 당장 대책을 만들어야 합니다. 상환 가능한 기업은 조기상환 받고 새로운 펀드를 조성하고 주식전환을 서둘러야 합니다.
▲사회 = 내년에 가서 CBO문제를 해결하기보다는 지금 대책을 수립해 부작용을 줄여야 한다는 곽 회장의 지적에 찬성합니다. 벤처기업 자금난이 가중되고 부실기업이 속출하고 있는 상황에서 기업인수합병(M&A) 여건을 조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습니다. 어떻게 봐야 합니까.
▲김 회장 = M&A도 중요하지만 기업간 전략적제휴를 알선ㆍ지원하는 민관합동의 `전략적제휴 지원센터`를 설치해야 합니다. 동종업체간 기술개발 제휴나 이종업체간 생산ㆍ판매 협력은 벤처기업이 상생할 수 있는 길입니다.
▲곽 회장 = 벤처산업의 구조조정이 절실한 때입니다. 자발적인 구조조정은 M&A를 통해 이루어지는데 경직된 제도로 인해 벤처기업의 인수합병이 원활하게 진행되지 않고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죠. 벤처기업의 결합을 막고 있는 관련규제를 과감히 철폐하고 M&A에 대한 감시기능을 강화해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유 청장 = 벤처 M&A 활성화가 벤처산업 육성으로 이어지는 것이죠. 벤처기업 M&A 활성화 종합대책을 마련해 조만간 벤처기업활성화위원회에 상정할 생각입니다. 주식교환시 법원검사 특례제도를 도입해 회계법인 평가로 대체하는 것도 강구할 수 있고, 주식교환에 따른 양도소득세 과세를 완화하는 것도 고려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서정명기자 vicsjm@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