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경제를 분석한 한 외국계 증권사의 보고서가 눈길을 끌었다. 한국경제의 실상을 뼈아프게 꼬집는 내용이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서울의 밤문화는 코스피(KOSPIㆍ종합주가지수)와 함께 울고 웃는다. 한국의 경기를 알려고 하면 한밤의 강남거리를 보면 된다는 것이다. 강남거리에 교통체증이 빚어지면 경제는 다소 하강기미에 있을지라도 코스피는 아마 최고치에 근접해있을 것이다. 당연히 위스키 소비는 폭발적으로 늘어나 강남거리는 불야성을 이룬다.
반면 강남거리가 한산하고 직장인들의 귀가시간이 빨라지면 경제는 바닥을 헤매고 있을 것이며 위스키소비도 함께 곤두박질친 것으로 보면된다.
한국증시는 변동성이 너무 심해 주요 경제지표로 한국증시에 투자할지 여부를 판단하기에는 너무 위험성이 크다. 대신 강남거리가 흥청거리면 주식을 팔고 룸싸롱에 파리를 날리면 주식을 사면된다.
한국증시가 변동성이 크고 짧은 것은 한국증시의 해외자본 의존도가 높고 한국주력산업이 수출의존형인 까닭이다.
결론적으로 한국기업이 변신하지 않는다면 한국경제의 미래도 없다. 수출의존을 줄이고 가격경쟁력을 갖는 지적소유를 기반으로 한 고부가제품 생산체제로 바꾸어나가야 한다. 현재 한국기업은 기술적으로는 중국에 3년 정도 앞서고 일본보다는 가격경쟁력이 있어 수출로 활로를 뚫었다. 하지만 중국기업이 우리를 따라오고 일본이 엔을 50%가량 절하한다면 한국경제는 어떻게 될까. 한국은 경쟁력을 잃게 된다. 5년내에 일어날 수도 있는 시나리오다.
이 보고서가 지적한 것은 우리 기업, 나아가 우리경제가 외환위기이후 예측하기 힘들 정도로 변동성이 심한, 불안한 모습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불확실성의 늪에 빠진 한국경제라는 얘기다.
최근 한국경제 위기론의 근저에는 이 같은 한국경제의 취약성이 고스란히 담고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라크전이 단기전으로 끝났지만 우리로서는 한 숨을 돌릴 여유도 없이 북한핵문제가 발등의 불로 등장한 상황이다. 북한핵문제 해결없이 한국경제의 미래도 논할 수 없다. 물론 북한 핵문제는 대화와 타협으로 해결되어야 한다는데 관련당사국들의 의견이 일치되는 것같아 다행스럽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경제는 핵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때까지 여전히 불확실성의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다 내부적으로는 개혁불안감에 휩싸여있다. 노무현 참여정부 등장이후 경제주체들간 반목과 갈등을 보이면서 서로간 시각차이만 확인했다. 한마디로 개혁인가 안정인가 노선싸움만 벌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만큼 참여정부의 행보가 어지럽다.
이는 노무현 참여정부의 정책결정에 일관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면 지나친 표현일까. 정부내 원칙논자(흔히 매파라고 하지만)들은 개혁의 당위성을 강조하며 흔들림없는 추진을 강조한다. 관료출신 온건론자(비둘기파)들은 안정에 초점을 맞추고 속도조절론을 주장한다. 상황에 따라서 제각기 목소리의 강도가 달라진다.
어째튼 한국경제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단기적으로는 내수경기 침체와 수출 급감을 극복해야 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성장의 새로운 원동력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숙제를 해결해 나가야 한다. 앞서 말한 외국증권보고서의 지적대로 5년뒤 우리경제의 위상을 어떻게 만들어갈 것인가. 이 질문은 팍스아메리카나가 지배하는 세계경제 질서에서 우리에게 던져진 새로운 화두다.
분명한 것은 개혁못지 않게 새로운 부를 만드는 성장도 중요하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 가진 자들이 쓰도록 하고 기업들이 기꺼이 투자할 수 있는 사회적인 분위기를 조성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개혁은 새로운 성장원동력을 만들어내는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
개혁과 성장은 대립의 관계가 아니라 미래 한국경제를 이끌 양립의 두축으로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의 5년을 짊어진 참여정부 정책결정자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시점이다.
<조희제(생활산업부장) hjcho@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