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11월13일] 닥터 노먼 베순


1939년 11월13일 중국 허베이성 오지 마을. 백인 한 사람이 숨졌다. 캐나다인 의사 노먼 베순(Norman Bethune, 중국 이름 白求恩). 중국에서는 슈바이처보다 더 존경 받는 인물이다. 온타리오주에서 1890년에 태어난 그는 순탄하게 자라났다. 토론토에 첫번째 의과대학을 세운 할아버지의 직업을 따라 의대를 졸업했을 때까지는. 인생의 전환점은 전쟁. 군의관으로 참전한 1차 대전의 참혹한 현실을 보고 폐결핵에 걸려 죽음의 문턱에서 돌아온 뒤로는 남을 위해 살겠다는 마음을 굳혔다. 사회봉사에 전력하면서도 북미 최고의 흉부외과 의사라는 명성을 쌓은 그는 1935년 다시 전쟁터로 떠났다. 민주선거로 선출된 좌파정권을 무력으로 뒤엎으려는 파시스트 쿠데타로 야기된 스페인내란에 뛰어든 것. 어네스트 헤밍웨이와 조지 오웰, 앙드레 말로 등 지성인들도 참전한 스페인 내란에서 그가 운영한 응급의료팀은 현대 야전병원의 시초로 꼽힌다. 응급채혈과 이동수혈을 처음 선보였기 때문이다. 히틀러의 지원을 받은 쿠데타군의 승리로 내란이 끝난 뒤 행선지는 일본과 싸우던 중국. 홍군(공산군)에 뛰어든 그는 전력을 다해 부상자 사망률을 획기적으로 낮췄다. 69시간 동안 쉬지 않고 일본군 포로를 포함해 100여명을 수술한 적도 있다. 수술 도중 패혈증에 감염돼 죽어가면서도 포탄이 터지는 전선을 찾아 다녔던 베순은 캐나다와 중국에서 성자로 추앙 받는다. 1990년에는 양국 공동으로 탄생 100주년 기념우표도 찍었다. 양국에는 베순의과대학도 있지만 한국에서는 생소하다. 1991년에야 전기 출판이 허용된 탓이다. 베순을 기리며 우리를 본다. 의대를 정점으로 하는 입시구조에 막대한 돈이 쓰여도 베순 같은 의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약자를 껴안으려는 이땅의 몇 안 되는 의사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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