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킹달러 시대 10년 만에 성큼… 글로벌 경제 지각변동 오나

선진국 중 나홀로 경기회복 출구전략 본격화땐 랠리 가속<br>금 등 원자재값 추가 하락 브라질·남아공 등 타격 우려<br>"투자매력 여전히 약해" 속단 경계론도 만만찮아


'달러화가 또다시 왕좌에 오를 것인가.'

지난 1976년 브레턴우즈 체제(금본위제) 해체 이후 세번째이자 2003년 마지막 달러 강세장 이후 10년 만에 전세계 외환시장이 '킹달러(king dollarㆍ달러 강세장)' 시대를 맞을 것이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유럽ㆍ일본 등 선진국 가운데 미국만 견고한 경기회복세를 보이고 있는데다 이들 국가 중 미국이 가장 먼저 출구전략에 나서면서 달러화 가치를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달러가 10년여간 지속된 저평가에서 벗어나 '강한 달러' 시대를 연다면 상품가격 급락 등 '싼 달러(cheap dollar)'에 익숙한 글로벌 경제에 거대한 지각변동이 일 것으로 보고 있다.

◇힘 받은 달러…상승 사이클 올라탔나=최근 달러가치는 무섭게 뛰고 있다. 전세계 주요6개국 통화 대비 달러가치를 보여주는 ICE달러 인덱스는 9일(현지시간) 84.642를 기록해 2010년 6월 이후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사실 달러화는 2009~2010년에도 한시적으로 강세를 띤 적이 있었다. 2009년 3월과 2010년 6월 달러인덱스는 각각 89.0과 88.4를 기록해 지금보다 최대 약 5포인트나 높았다.

하지만 최근의 달러화 움직임은 과거와 근본적으로 다른 거대한 상승조짐을 예고한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당시 금융위기의 여파로 안전자산 선호심리가 커지고 미국 은행의 대출이 줄어든 일시적 요인 때문에 달러가 '반짝' 각광을 받았다면 지금은 미국의 경기회복이라는 근원적인 동력이 달러화 가치를 밀어 올리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6월 미국의 비농업 취업자 수가 당초 예상을 크게 웃돌며 전월 대비 19만5,000명 늘어나는 등 주택시장에서 일기 시작한 경기회복의 훈풍은 고용시장으로도 확산되고 있다.

특히 미국의 성장세는 앞으로 여타 선진국을 월등히 뛰어넘을 것으로 전망된다. 국제통화기금(IMF)은 미국의 경제성장률이 오는 2015년 3.56%를 기록하는 반면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과 영국ㆍ일본 등은 각각 1.5% 내외의 성장에 그칠 것으로 내다봤다.

게다가 이 같은 경기 회복세에 힘입어 미국이 이르면 9월부터 출구전략에 돌입할 가능성이 높다. 유럽과 일본 등이 당분간 양적완화를 유지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미국이 돈줄을 조이면 달러화 강세에 한층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노무라증권의 옌스 노르드빅 상무는 "달러강세가 향후 3~4년간 계속돼도 놀랄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환율정보 업체 페이든앤리절의 나이절 젠킨스 대표도 "달러화가 단기적으로는 등락을 거듭하겠지만 추세적으로는 수년간 강세를 이어갈 것"이라고 확신했다.

◇글로벌 경제 지각변동 예고=세계 기축통화인 달러화의 강세장이 실현될 경우 지난 10년간 '싼 달러'에 익숙해진 글로벌 경제에 커다란 변화를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가장 먼저 타격을 입는 것은 금값이다. 달러의 대체재인 금값은 역사적으로 달러가치와 반대로 움직여왔기 때문이다.


브레턴우즈 체제 해체 이후 1차 달러 강세장으로 평가되는 1980년대 초ㆍ중반 달러가치는 급등해 1985년 2월에는 달러 인덱스가 160까지 치솟았다. 반면 금값은 온스당 284달러로 5년7개월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다. 1차 강세장은 폴 볼커 당시 연방준비제도(Fedㆍ연준) 의장이 석유파동에 따른 물가상승을 잡기 위해 정책금리를 11%에서 2년 만에 20%까지 끌어올린 탓에 연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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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달러 강세장으로 분류되는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에도 달러가치가 꾸준히 올라 2002년 1월 달러 인덱스는 120.21까지 상승한 반면 금값은 1996년 온스당 415달러에서 2000년 252달러까지 곤두박질쳤다. 2차 강세장은 미국발 정보기술(IT) 혁명과 금융업 호황, 멕시코 및 아시아 외환위기 등이 겹쳐 이뤄졌다.

달러화로 거래되는 원자재 가격 역시 하락이 불가피하다. 이미 이런 상황이 반영돼 알루미늄ㆍ구리 등 철강제품부터 원유ㆍ곡물 등 28개 원자재 가격 추이까지 보여주는 로이터제프리CRB지수는 지난달 28일 275.62를 기록하며 1년 만에 최저치로 추락했다. 이런 추세가 계속될 경우 원자재 수출에 의존하는 브라질ㆍ남아프리카공화국ㆍ호주 경제는 크게 휘청거릴 가능성이 있다.

반면 우리나라와 같이 미국에 대한 수출 의존도가 높은 나라는 혜택을 누릴 것으로 보인다. 달러강세에 따른 자국 화폐가치 하락으로 수출 경쟁력을 확보하는 동시에 미국 경기 호조로 미국인의 소비 또한 늘어날 것이기 때문이다.

◇"속단 이르다" 경계론도=다만 지금의 달러화 강세가 '킹달러'의 부활로 이어질지 여부를 속단하기는 이르다는 경계론도 만만찮다. 달러가치는 아직 3년 만의 최고 수준에 불과해 10년 만의 강세장이 펼쳐질 것이라는 주장이 대세론으로 인정받으려면 시간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4,000억달러 규모의 투자금을 운용하는 프루덴셜그룹의 마이클 콜린스 수석 투자가는 "신흥국 통화와 비교했을 때 달러는 여전히 투자유인이 약하다"며 "최근 신흥국에서 빠져나간 자금이 달러로 지속적으로 유입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고객들에게 미국 밖에서 투자 대상을 찾으라고 권고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1980년대 1차 강세장 당시는 기준금리가 급격히 올라 달러가치가 상승했지만 현재는 연준이 금리를 점진적으로 인상하겠다고 밝히고 있는 만큼 딜러강세가 이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또한 1차 달러강세 때와 달리 현재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1.4%에 그치는 수준이어서 향후 달러강세가 이어질 여지가 작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이태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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